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노무현 정부의 경제에 대한 평가는 반기업 친서민 정책 때문에 기업 투자가 부진하고 국내기업의 해외도피 등 기업의 의욕 침체로 경기침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것이 청년실업 등 국민경제의 고통을 가중시켰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것을 두고 노정부 때의 침체된 민생경제를 안정시켜 달라는 국민적 요청이 폭발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대통령에 대해 과거 대기업 CEO로서 경제 전문성을 살려 서민들도 일자리를 가지고 생활 걱정없이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국민의 염원이 담겼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이 취임초 규제를 철폐하고 세금을 깎아주는 등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표방했을 때 이를 정경유착이라고 비판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었다. 기업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서 미국발 금융위기도 넘겼고 기업들도 많은 수익을 내는 등 한국이 세계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과시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G20 의장국으로 국가적 위상도 높아졌다.

그러나 결과는 기업들은 살이 쪘지만 서민들은 오히려 고통이 늘어났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더 심화되었고 살찐 대기업들은 서민들의 경제난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에만 더 탐익했던 것이다.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금융위기를 잘 넘기고도 국민들의 지지율이 떨어졌고 결국 6·27재보선에서 야당에 참패하고 말았다. 대기업들이 풍성한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서민들은 저소득, 물가고, 비싼 등록금, 전세난, 실업 등에 시달리고, 중소기업들과 동네시장의 소상인들은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시장침탈, 기술날치기 등 참기 힘든 고통이 집권여당에 등을 돌리게 했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쌓아두고 신기술 개발과 일자리 증대에 투자하기보다 소상인들의 업종에까지 문어발식 기업확장을 일삼았고, 상속 증여세를 탈루하기 위해 가족자회사를 설립해 일감을 몰아주는 등 대기업의 극단적 탐욕에 서민들의 분노가 한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서민들은 이제 더 이상 이 정부의 기업 프렌들리 정책에 기대할 것이 없게 됐다. 집권당의 목소리가 감세 철회와 무상복지 반값등록금 쪽으로 돌아서고 당대표 선출을 위한 공동연설장에서 이같은 친서민정책이 크게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그동안 국민들의 정서가 뒤바뀐 까닭이다.

이처럼 국민정서가 친기업에서 다시 반기업으로 돌아서게 만든 것은 바로 대기업 자신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최근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한나라당의 `감세철회`와 `반값 등록금` 정책에 대해 `포퓰리즘`이라 비판했고,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는지 의문”이란 말로 여당의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동안 기업에 온갖 혜택을 주었던 집권당은 국민들의 비판과 동시에 대기업의 빈축을 싼 것이다. 경제단체장을 국회 공청회에 불러내기로 여야가 합의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일부 여론은 한나라당이 우에서 좌로 이동했다느니, 국가재정을 생각지 않는 망국적 포퓰리즘이라 비난들 하지만 국민들의 성난 목소리에 가려 귀에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기업이 규제완화와 세금 감면의 혜택을 받으면서 벌어들인 엄청난 이익금을 쌓아두고 국민의 고통은 외면한 채 탐욕적 사업확장에 몰입한다면 정치권에 앞서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기업이 국민과 국가의 이익과 배치된다면 무엇 때문에 정부가 이들과 친화적 정책을 펴야할 것인가.

세금 감면이 이론적으로 국민경제에 도움이 된다지만 눈앞에 나타나는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분명히 그 이론은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다른 나라에서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례가 있다 해도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다. 특히 자유자본주의 사회는 아무리 정부가 앞장서도 기업과 기업인이 사회적 역할을 외면한다면 그 체제는 지켜지기 어렵다. 최근 미국의 경제위기가 미국의 금융체제를 탈보수(脫保守)로 만든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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