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최인호. 한국 문단에서 개성적 성취를 이룩한 원로 문인 두 명이 나란히 신작 장편소설을 냈다.

어느덧 나이 예순 중반에서 일흔에 이른 이들이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백하게 들여다 본다. 자본주의와 도시의 속성, 자기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현대 도시인의 고독을 이야기 한다. 이들의 작품은 출간 1~2주일만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또한 이런저런 매체에 연재했던 것을 모으지 않고 전작으로 소설을 완성했다는 공통점도 눈길을 모은다.

무엇보다 50~60년 동안 한국 문단을 지키며 왕성한 필력을 자랑해온 이들의 그치지 않는 문학열정을 만나 볼 수 있어 반갑다.

소설은 늘 우리를 새로운 세계와 사람들에게로 데려간다. 올 여름 우리의 시공과 시야를 확장시켜 줄 좋은 작품들이다.

■`낯익은 세상`

소설가 황석영(68)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국내 대표적 소설가.

`낯익은 세상`은 개발이 지상과제였던 80년대 난지도를 무대로 그곳에서 성장한 10대 소년이 주인공이다. `딱부리`라는 열네 살 소년이 폐품 수집꾼으로 일하는 엄마를 따라 쓰레기 매립지인 `꽃섬`에 들어와서 겪는 일을 그렸다. 쓰레기장인 꽃섬(난지도의 옛 이름)을 터전으로 삼은 빈민들의 이야기는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가 삶의 목적이 된 지금, 쓰레기는 매립지로 오기 전까지 생산과 소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간들의 욕망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또 딱부리의 눈을 통해 이곳이 도시문명에서 얼마나 고립된 낯선 세상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욕망과 소비와 폐기가 반복하는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하고 낯익은 것인지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소설은 쓰레깃더미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체의 축제처럼 행하는 식사, 어른되기가 어렵거나 어른되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천진성, 자연의 질서에 대한 샤머니즘적 믿음, 전원시적인 농촌의 이미지…. 무엇보다도 세계의 마법을 기억하는 동화적 이야기구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작가의 말`에 표제의 의미가 곡진히 밝혀져 있듯이, 이 소설의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꿈까지도 탕진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다. (……) 체르노빌처럼 후쿠시마처럼 `매트릭스`로서의 그 세계는 바로 우리 지척에 있다.” (`작가의 말`에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침샘암으로 투병중인 소설가 최인호(66)는 이 소설을 통해 지난 30여 년 동안 몰두했던 역사·종교소설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최인호`라는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린 현대소설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느닷없는 소음에 주인공 K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범적인 가장으로서, 의사 친구와 가깝게 지내며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도덕적 결함을 견디지 못하는 제도적 인간으로서, 그리고 주일마다 미사에 반드시 참석하는 견실한 신앙인으로서 K는 생의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상이 조작되고 현실에 균열이 생기며, 그로 인해 환상과 실재의 공간을 오가면서 K는 사실 조작된 것은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주변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급기야 처음에는 자신의 행세를 했을 것이라 믿었던 또 다른 `K`에게 순순히 `참 자아`의 자리를 내주고 만다. 자신이 쌓아온 견고한 삶이 생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생은 때때로 허물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 자신이 만든 견고한 삶은 하나의 무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거기에 `진짜 삶`은 없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K는 자신의 배역과 역할에 충실한 동안 정작 자신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한다. 도덕적이고 합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세상에 떳떳하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제도에 순응함으로써 갖게 된 스스로의 착각일 뿐이다. 그 단단할 것 같은 일상에 금이 가면서 K는 자신을 의심한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그는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된 또 다른 삶을 목격하는 것이다.

“우리가 본래의 우리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일상의 틈을 통해서다. K가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순간은 지진의 균열이 일어날 때와 일치한다. 디디고 선 땅이 물렁해지는 이 의심의 순간은 진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심을 통해 만나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건 일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이리라. (…) 현실은 언제든 그처럼 붕괴될 수 있다는 점, 그게 바로 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거대한 별사(別辭)인 동시에 어떤 붕괴에 대한 보고서랄 수 있다.”_<발문>, 김연수(소설가)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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