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찾은 장족 민가는 그들의 전통가옥을 제대로 보여주는 집이었다. 대문에 들어서자 나무와 흙으로 지은 3층 집이 보인다. 1층은 소, 돼지, 닭 등의 동물들이 사는 우리다. 2층이 살림하는 주거 공간이다.

집 짓는데 꽤나 정성을 들인 것 같다. 1층 동물 우리를 들여다보니 아무 것도 없다. 분명 짐승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천장에 굵은 나무들이 2층을 받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길 주변에서 만난 돼지와 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해 뜨면 밖에 나가 풀을 뜯고, 제 스스로 활동하다 밤이 되면 우리로 기어들어오는 것이 이곳의 동물이다. 동물과 인간이 남이 아니라 서로 같은 공간에서 삶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나무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서니 마루와 안채가 구별된다. 처마 밑 나무엔 단청도 되어 있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도 보인다. 2층 안채로 들어갔다. 내실 역시 바닥은 마루고 벽면은 나무로 되어 있다.

모든 장식이 수공예다. 넓은 홀 남서쪽 모서리엔 부처님을 모셔놓고 정갈한 정화수를 올리고 있다. 그 앞으로 불 좋은 난로가 놓여 있다. 난로 주변에 앉아 주인 할머니가 따라주는 수유차 한 잔을 마신다.

할머니의 의상도 장족의 전통 복식이다. 빨강색 모자에 두꺼운 곤색 옷은 그들 삶의 방식대로 바느질로 꿰맨 것이다. 뜨거운 수유차 한 모금이 목줄기를 타고 뱃속으로 들어간다. 설당을 넣었는지 달콤하다.

난로 위 연기가 빠지는 천장 쪽 선반에 원뿔 모양의 치즈 두 덩이가 익어가고 있다. 햇살이 들지 않는 시원한 쪽 다락에는 다 만든 둥근 치즈가 여러 개 쟁여 있다. 앞으로 먹을 식량이란다.

방문객을 위해 치즈와 과자를 내 놓는다. 치즈 몇 조각 맛을 보았다. 괜찮다. 볶은 보리도 있다. `청과`라 하는데 우리의 보리, 밀과 같은 식물이다.

굴뚝도 없는 난롯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할머니의 서빙을 받는다. 찻잔이 비면 다시 수유차를 따라준다.

난 슬며시 일어나 바깥 마루로 나와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아본다. 3층은 그야말로 창고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다락방이다. 지붕의 나무 조각이 그대로 보였다. 2층 난로에서 피운 장작불의 연기가 3층으로 올라와 지붕으로 빠져나간다.

이곳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그대로 담겨 있는 의식주 문화를 속속들이 보는 것 같았다. 감사 인사를 하고 민가를 빠져나왔다. 그 집 바깥마당에는 아름드리나무 몇 개가 누워있다. 송진을 보니 소나무다. 그 나무는 오후에 가기도 되어 있는 해발 3,500m 이상의 푸타춰 국립공원 원시림 내에서 생산된 나무란다.

중국식으로 점심을 먹은 후 푸타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높은 지대인 푸타춰 국립공원까지는 과거 3시간 정도 걸리던 길이었다. 2006년 길이 포장 개통되면서 30분이면 갈 수 있다. 중국의 발전 모습을 그런 곳에서 다시 보게 된다.

4,200m. 정확히 어느 곳이 그 높이인지 모르지만 버스로 이동하다 보면 푸타춰 국립공원의 고산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여행 중 고산병에 대비하라고 준`다이아막스``홍경천` 등 각종 약을 먹지 많았다. 고산 증세를 이길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늘 조심해야 한다. 성하던 사람이 고산병으로 여행 못하는 것을 몇 번 보았다. 고산에 과신하는 것은 금물이다.

푸타춰 국립공원 가는 길 주변은 애목두견목이 지천이다. 4, 5월에는 활짝 핀 두견화로 장관을 이룬단다.

3시 18분. 푸타춰 국립공원에서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해발 3,400m다. 산 고개를 오르고 내려 제일 먼저 멈춘 곳은 `소도호`였다. 입구에서 15.6km나 떨어진 곳이다. 나무로 만든 산책로를 따라 걷던 우리 일행은 사진 몇 컷 찍은 후 다시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비탈진 고개를 오르고 내리면서 고도를 조금씩 높인다. 해발 4,100m. 낮은 산 저쪽으로 설산이 보인다. 다시 버스가 멈춘 곳은 `미리호` 미리호는 건기라 그런지 물이 보이지 않았다.

야크와 조랑말이 여유롭게 풀을 뜯는다. 중간에 가옥이 있다. 그 가옥은 동물들이 한파 때 피할 수 있는 곳이다. 방목하다 보니 어느 땐 말들이 새끼를 낳아 더 많은 식솔을 거느리고 집에 돌아온단다. 동물에게 주인 표시를 해 놓았기 때문에 도둑맞을 일은 없단다. 더욱이 이곳 사람들은 심성이 착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단다.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푸타춰 국립공원의 핵심 코스인 `벽탑해`로 가는 길이다. 소도호에서 벽탑해까지는 16.6km. 대리의 이해(耳海)처럼 벽탑해(碧塔海)도 `해(海)`자를 붙였다. 바다 같다는 뜻이다. 육지의 바다.

주변은 원시림에 원시림이다.

길옆 나무들이 아름드리다. 굉장하다. 그런데 가지마다 식물이 늘어져 있다. 털실같은 기생식물이 나무 가지에 축 처져 있다.

산비탈 저 아래로 벽탑해의 물이 보이고 가운데 섬도 나타난다.`옛날 요괴가 나뿐 짓을 하다가 그 섬에 갇혔다는…`섬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

차는 높은 고개를 넘어 4시 30분 벽탑해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한 시간 산책하기로 했다. 주차장의 해발 높이는 3,700m.

일행들보다 빨리 성큼성큼 걷는다. 늪지대다. 늪지대에 강화목으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왼쪽으로 라마교의 타르쵸와 롱다도 보인다. 그 밑으로 물이 솟는다. 납파해의 수원지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으면서 쉼터 정자를 지나 납파해의 물가로 접어든다.

상쾌하다. 강한 햇살이다. 그러다 해는 구름 속에 몸을 숨긴다. 저쪽 산 아래 여러 필의 야크와 말이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다. 길은 벽탑해의 왼쪽으로 이어진다.

고요하다. 아름답다.

나무 사이로 이어진 길을 밟으며 생각한다. 낯선 곳이 진정 아름답기 위해서는 사람의 발길 덜 닿은 곳이어야 한다고…. 그렇기에 여행 마니아들은 더 오지로 향하는지 모른다. 도시의 문명에 찌든 그 흔적을 하나하나 털어낼 수 있는 곳, 그곳은 아무래도 자연의 품이다.

이상향의 도시 상그릴라도 그런 곳 중의 하나로 인식될 것이다. 바람처럼 발자국만 남기고 가자. 수면 저쪽을 바라본다. 서편으로 향한 해님의 햇살이 짤랑짤랑 소리를 내듯 미끄러진다. 조금 더 안쪽으로 걷는다. 풍광이 더 뛰어나다. 호젓한 산책로다. 뚫린 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전망대도 만들어 놓았다.

평화롭다.

평화가 머문 곳, 상그릴라.

혼자 있기 때문에 나만의 특별한 여유를 만끽한다. 긴 시간이 아니어도 좋다. 잠시 전망대에 멈추어 수면을 본다. 고산에서 사는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있다.

모든 생물들이 제 처한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자연이 흐름이다. 역기능을 스스로 제거하고 자연의 조화에 순기능하려 노력하는 것이 자연이다. 자연은 모든 것을 스스로 치유한다. 티벳 민족에게 있어, 장족에게 있어 이런 곳은 하나의 성지다. 이런 자연 풍경 하나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 부질없는 욕심인 줄 알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4, 5월 두견화 활짝 폈을 때를 상상한다. 지천으로 널린 연분홍 꽃, 꽃향.

상상만 해도 참 아름답다. 왔던 길을 되밟는다. 역광으로 저 앞에 있는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오늘의 해도 서편으로 한참 기울어져 있다 내일 새벽 이곳, 상그릴라를 떠나 다시 곤명으로 간다.

어딘지 모를 상그릴라의 아름다움을 마음 한 곳에 더 채울 수 있는 곳이 있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는데 말이다. 그 아쉬움이 새로운 상그릴라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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