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신 객원 논설위원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
부처님이 태어나신 북인도의 하늘에 뜬 별은 너무 아름답다. 마치 보석이 잔뜩 뿌려진 것처럼 총총 빛을 내뿜고 있다.

인도를 여행하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일주일간 인도를 여행한 사람은 책을 한권 쓰고 7개월을 여행한 사람은 시를 한편 쓰지만 7년을 산 사람은 아무것도 쓸 수 없다고 한다. 인도는 그만큼 다양한 문화를 지녔을 뿐 아니라 세월이 갈수록 더 신비해지는 나라로 해석된다.

인도에서는 평범하게 사는 시골 노인이라도 생사문제만은 철학가의 수준을 뛰어넘는 지식을 갖고 있다. 이러니 사두(힌두교 수행자)의 걸음걸이는 여유가 넘쳐서 생의 무게를 찾을 수 없다.

바리나시에서 만난 사두의 형형한 눈빛은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어제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오늘을 살면 모든 것이 편안해진다” 말 한마디에는 속도감에서 헤여나지 못하는 길 위의 영혼들에게는 가슴을 망치로 치는 심금이 된다.

석가모니는 29살에 출가, 고행 6년 만에 보다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성자이자 천재다. 보다가야 대탑은 열반 300년 후 법륜성왕으로 추존된 아쇼카 왕이 세웠다.

사르나트 박물관에는 부처님 초전 법륜 상을 가장 잘 나타낸 5~6세기에 조성된 걸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보일 듯 말듯이 흘러내리는 미소, 지그시 감은 눈의 부처님 상을 만지고 싶고 껴안고 싶어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숱한 전란과 도굴로 이어진 1500년의 세월을 잘도 이겨냈다.

열반 후 500년간은 불상이 없었다. 초기 간다라 불상이 명상을 표현했다면 그리스문화의 영향을 받은 마투라 불상부터 미소를 띠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불상은 마투라 이후에 건너 왔다고 여겨진다.

난행고행이다. 내가 열심히 정직하게 사는 것이 부처님 말씀 잘 따르는 것이자 이롭고 행복한 삶이다. 부처는 동방 동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중생 사는 곳을 보는 눈이다. 서방정토는 결국 어디일까. 아미타여래를 바라보는 방향이 부처님이 사시는 곳이자 중생들이 뒤엉켜 사는 곳.

유장한 갠지스는 어머니의 강이다. 인도는 성자의 나라, 사람의 나라다. 소와 인간, 힌두의 윤회사상이 깔려있고 모든 종교관을 품고 있다.

델리에 있는 바하이 사원은 인도의 국화인 연꽃 모양을 닮아 연꽃사원이라 부른다. 27개의 거대한 연꽃잎 모양을 보고 한마디 감탄사를 내지 않고는 지날 수 없다.

델리시내의 종교 광고판도 이색적이다. 수많은 신들이 명함판 사진 크기로 게시돼 있었고 골목마다 신이 틀린다. 신의 생일날 거리퍼레이드는 통상 반나절 정도 걸리며 향이 무척이나 짙은 아르 꽃 목걸이로 단장한다.

신은 홍수·가뭄도 막아주지만 강한 힘을 심어주는 `하누만`이나 `땅의 신` 빨간 코끼리처럼 생긴 자연의 신 `레니쉬`를 따르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의 면면을 훑어보면 주로 레슬러나 힘을 많이 쓰는 운동선수들이다. 레슬러들이라 하드라도 `레니쉬`만 믿는 것이 아니라 10가지가 넘는 신을 믿고 경배하고 경기에 나간다.

석가모니가 태어나신 북인도에 도착하면 그날로 추억여행이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60년대 말이다. 소달구지가 한껏 여유를 부리고 거리의 이발사가 손님의 머리를 손질해 주는가하면 운동화바닥을 기워주는 거리 행상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시가를 벗어나면 가로수 허리춤 형광페인트 칠이 도로 경계선이며 나무 전신주가 어지럽게 서있다. 맨바닥 부엌에서도 얼마든지 정결하고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진다. 밤에는 가로등조차 없는 캄캄한 거리지만 길을 잃고 헤매는 인도인들은 없었다.

살은 사람이던 망자이던 인도는 갠지스 강 항하사(모래)를 밟으면서 불평 없이 세상을 사는 게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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