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포항시 축제위원회 위원장
포항시 북구 청하면에 있는 기청산식물원에 가면 식물을 제대로, 체계적으로 구경하고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안내하고 있는 관찰순로가 있다. 그 길에서 가장 처음 만나는 식물은 양치식물이다. 잎이 마치 양의 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고사리 종류의 식물들이다. 꽃은 없고, 포자로 번식하는데 약 4억 년전부터 이 지구상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공룡이 멸종하는데도 살아 남았으니, 공룡보다 더 강인한 식물이겠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고사리, 혹은 고비라고 하는 이름의 이 양치식물이 약 350여 종이나 된단다.

고비, 울릉고사리, 십자고사리, 고비고사리, 청나래고사리, 개고사리, 처녀고사리, 설설고사리, 꼬리고사리, 도깨비쇠고비, 왕지네고사리, 쇠고비, 비늘고사리, 참새발고사리. 이름이 예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게 그것 같은데 참 다양하고 많기도 하다. 더 이상 알려고 들면 끝도 없을 것도 같고, 솔직히 더 예쁜 것을 보고싶은 욕심에 슬쩍 무심코 지나치게 마련인 식물이 아닌가. 그런데 난 그렇지 않다. 유독 고비가 눈에 설지 않아 이름들을 꼼꼼히 읽으며 꽤나 많은 시간을 거기에 머문다. 이유가 있다. 내가 고비를 키우기 때문이다. 산불 난 자리에 가장 먼저 나는 식물이 고사리라는 것이다. 4억년을 살아낸, 공룡보다 더 질긴 고사리의 DNA가 산불로 벌겋게 흉측해진 산을 이 고사리과 식물들이 그야말로 작고 오물거리는 아가의 고사리손 펴듯 피어내면서 스스로 살아내는 힘을 갖는다고 한다.

10년도 더 전이다. 날 참 잘 따르던 후배와 꽃집에 간 적이 있었다. 후배는 나에게 예쁜 꽃을 선물해주고 싶어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많은 꽃 중에서 유독 내 눈에 띈 화분이 있었다. 누런 호박 두 개를 포개놓은 듯 예쁘지도 않은 화분에 풍성하게 흐드러지듯 풍성한 고비 화분이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여러 사람들이 다들 말렸다. 꽃도 안 피고, 화분도 예쁘잖고, 무슨 고사리를 고르세요? 의아해들 하는데도 난 그 화분을 고집했고 기어이 샀다.

집에 가져다 베란다에 두었더니, 고를 때 마음과는 달리, 예쁘고 잘 생긴 꽃이나 나무에 밀려 늘 구석진 곳으로 밀려났다. 때론 눈에 띄지도 않았던지 물도 얻어먹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더니, 어느 핸가부터는 화분 위로 털복숭이같이 징그러운 뿌리들이 올라오면서, 그 뿌리의 곳곳에서 새로운 줄기를 만들어 올린다. 이삼우 원장님께 여쭈었더니, 땅에서 자랄 식물이 화분에 있으니 뿌리가 화분 위로 올라올 수밖에 하시며 허허 웃으셨다. 솔직히 징그럽긴 하지만 신기하기에 자주 보며 물을 주었더니, 어쩌면 풍성하고도 무성하게 잎들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마치 푸른 나무같이 잘도 자랐다. 그 덕에 가끔 베란다 가운뎃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고도 또 무심히 대하면 누렇게 마른 잎을 시름처럼 떨구기도 하지만, 물 좀 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살려달라고 애원도 않고 죽겠다고 앙탈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지난 겨울 모진 추위도 견뎌내더니 이 봄에 더 왕성히 뿌리와 잎을 쏟아낸다. 추위에 대부분의 화분들이 말라 죽었는데도 날 보란듯이 고비는 잘도 살아내고 있다.

오늘 아침, 고비에 물을 듬뿍 주었다. 화분에 철철 넘치도록 흠뻑 물을 주면서 말을 걸었다.

“역경지수(AQ:Adversity Quotient)라는 말을 아니?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폴 스톨츠가 만든 용어란다. 이 역경지수가 높은 사람은 역경을 만나게 되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기어코 역경을 이겨낸단다. 성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역경지수가 높단다. 고비야. 넌 4억 년의 역경을 이겨냈으니 진짜 진짜 성공한 식물이구나. 내가 널 골라 집에 가져와 10년을 버텨낸 놈, 또한 너 하나뿐이었으니 네 역경지수는 내게도 충분히 증명되었네. 더러 홀대하고 때로 잊혀졌어도 죽지않고 뿌리 내밀고 꼬물거리며 새 고사리손 내미니 정말 기특하구나. 고맙다. 고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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