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하루 또 하루` 문학과 지성사 刊, 김광규 지음, 136쪽, 7천원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한 이래, 생활 세계 속의 현실 체험을 바탕으로 `일상 시`의 영역을 꾸준히 개척해온 시인 김광규의 시집 `하루 또 하루`(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시인 김광규는 녹원문학상, 김수영문학상, 편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30년 넘게 꾸준히 시를 창작해온 한국 시단의 거목이다. 이번 시집은 그의 열번째 시집으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십진법의 기수에 1을 더한 숫자 10은 두 자리 수가/시작되는 출발점”이기에 “새로 떠나야 할 시점”인 지금, “헌 신발 끈을 다시 조여”매며 각오를 다진다. 시집 `하루 또 하루`는 총 5부로 구성돼 있으며, 자연으로부터 얻은 인상, 이제껏 사람들과 맺어온 관계에 대한 반성,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고, 여행지에서의 깨달음, 그리고 별세한 지인들에게 보내는 추모의 내용 등이 담겼다.

김광규의 시에 현현되는 자연은 타자로서 관찰되는 대상이 아닌 발화의 주체이다. 그의 데뷔작 `영산(靈山)`과 `유무(有無)1` 등에서부터 일관되게 나타나온 자연과의 합일된 정서는 이번 시집에서도 완만하게 이어졌다. 특히 1부 `푸르미`에 묶인 시 속의 자연물들(뿌리, 달, 능소화 등)은 그 자체가 시인이자 시가 돼 싱싱한 푸름으로 살아나기도 하고(`푸르미`), 외로운 밤 따뜻한 위로(`나 홀로 집에`)로 다가오기도 한다. 시인은 자연을 들여다보는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 자연이 돼 삶과 눈을 맞추는 자세를 취하며, 자연으로부터 받는 인상들을 통해 삶의 이치들을 깨우쳐간다.

“복실이가 뒷다리로 일어서서

창틀에 앞발 올려놓고

방 안을 들여다본다

집 안이 조용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나 보다

오후 늦게 마신 커피 덕분에

밀린 글쓰기에 한동안 골몰하다가

무슨 기척이 있어

밖으로 눈을 돌리니

밤하늘에 높이 떠오른

보름달이 창 안을 들여다본다

모두들 떠나가고

나 홀로 집에 남았지만

혼자는 아닌 셈이다”(`나 홀로 집에`전문)

더하여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사람들과 맺어온 관계를 환기하며, 이에 대한 고민들을 조촘조촘 시에 새겨나간다. 김광규 시인 특유의 따뜻한 눈길로 이웃, 친구, 가족 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자신이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상처 주었던 지난날을 아프게 반성한다. 교대역에서 50년 만에 우연히 마주친 지인과 “서로 바쁜 길이라 잠깐/악수만 나누고 헤어”진 만남이 마지막이었음을(`교대역에서`), 동네 박공집 쓰레기 더미에서 자고 있는 사내를(`전망 좋은 방`), 나이 들어 잔소리하는 아내의 얼굴에서 발견한 누나의 모습을(`다섯째 누나`), 시인은 바라보고 생각하고 또다시 시로 풀어낸다.

김광규는 깨어 있는 감각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 또한 잃지 않는다. 시인은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들의 박한 임금(`굴삭기의 힘`), 소형 임대 아파트 주민들의 소외(`나뉨`), 위안부 문제는 외면한 채 제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의 탐욕(`인수봉 바라보며`)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그는 시 속에서 노한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논리적으로 똑똑하게 문제 지점을 잡아간다. 문학비평가 오생근이 말했듯 김광규는 “비천한 현실을 파괴하고 해체하기보다는 현실을 적절히 비판하면서 진정한 삶을 긍정”하고 있다.

마지막 5부 「쉼」에 이르면 시인이 별세한 지인들에게 보내는 추모의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소설가 홍성원과 함께 페리선 난간에 기대어 찍은 사진을 보며 그리운 마음을 토로하는 `회색 사진첩`, 소설가 이청준과 젊은 날 함께 문학에 대해 논하고 삶의 아픔을 나누던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가는 `미백 영전에` 등이 이러한 시다. 더하여 종심(從心)의 나이에 이르러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초연하게 죽음을 바라보는 노시인의 담담함도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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