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암 석굴 전경, 보안암 석굴 내부와 석불
시집간 딸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문화재 보존과 원형 복구 기술 개발을 위해 건축환경학적 측면에서 연구를 해오던 필자였다. 토함산 석굴암 석굴의 원형 복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와 가장 유사한 또 다른 석굴을 찾아 석굴의 실내 환경 측정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했었다.

우리나라의 석굴 수는 대략 180여개가 된다. 그 중 토함산 석굴과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해 찾은 곳이 경남 사천시 천왕산 해발 570m 동쪽 기슭에 위치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 `다솔사 보안암석굴`이었다. 판석(板石)을 이용해서 만든 이 석굴은 보는 순간 모든 조건이 토함산 석굴 원형복구에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토함산 석굴암의 석굴은 정상 동쪽 바로 아래 경사면에 작은 평지를 조성하고 그 곳에 대좌(臺座)를 놓고 결가부좌한 본존불을 봉안한 후 그 좌우에 팔부중과 인왕상 그리고 사천왕상을 배치했다. 다시 그 위에 커다란 판석(板石)을 가구(架構)하여 전방후원(前方後圓)의 석조건축으로 본존불 상부를 궁륭형 돔(Dome)식으로 구축한 축조굴이다. 1913년부터 1915년 사이 일본인에 의해 1차 훼손된 석굴암은 1961년부터 1964년까지 우리나라 기술진에 의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끝내 원형복구에는 실패했다. 단지 석굴 내 습윤을 방지하고 이끼가 끼지 않도록 공기조화설비를 갖춘 지금의 석굴 구조로 변모시켜 놓았을 뿐이다.

석굴사원이란 한 마디로 바위를 뚫어 만든 사원을 말한다. 그런데 토함산의 석굴은 인도나 중국의 석굴사원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암질(岩質)이 다르다. 인도나 중국은 사암(沙岩)이거나 흑대리석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뚫기가 매우 어려운 화강암이다. 결국 개착석굴(開鑿石窟)이 어려운 우리나라의 현실이 경사지를 `ㄴ`자형으로 고르고 축대를 쌓아 평지를 만든 다음 그 곳에 특이한 형식의 석굴을 조성한 것이다.

토함산 석굴암과 유사한 석굴을 찾긴 했지만 난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암자에는 비구니 스님 두 분이 계셨는데 석굴에서는 참배 외에는 다른 어떤 행위도 일체 금한다는 것이었다. 석굴 실내 환경 자료 수집을 위해서는 온열환경 측정은 기본이고 촬영도 해야 하는데 실로 암담한 노릇이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스님께 고3 딸의 수험을 핑계로 천배를 올리겠다하고 부인이 2시간여 기도하는 동안 실내온열환경을 숨죽여가며 측정하여 데이터를 손에 넣고 부리나케 하산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찍은 사진이 모두 반씩만 현상된 게 아닌가. 황당했다. 다시 찍으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때 고3이던 딸은 그 후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고 10년 후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지만 토함산 석굴암 석굴 원형 복구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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