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 시인의 제9시집 `상응`은 좀 특별나다. 아담한 크기의 시집 판형과 거기에 수록된 시편도 고작 32편이어서 독자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간다. 기다란 시나 산문시가 60편을 넘어 70편에 가까운 일반적인 시집들과는 비교가 된다. 부피가 작고 수록된 편수도 적지만 그의 시들이 내장하고 있는 의미는 자못 깊고도 크다. 그 가운데 `청도 냇가에서 대 무늬진 돌을 주워 동풍`이라 이름 짓고`라는 좀 길고 독특한 제목의 시 한 편을 읽어본다.

“속속들이 두근대는 동부새에, 상기 성깔 남은 소소리바람에, 짐짓 명랑한 듯 퍼덕이는 동풍에 휘는-꼿꼿하게 휘는-겨울, 대나무들. 누워서도 안간힘으로 버티면서 마디마디 곧게 설레는, 동부새에 소소리바람에 동풍에 눕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마디마디 한 마디로 일어나는 대나무들의 푸른 물음들. 봄으로 쓸리는, 서걱대는, 헛될 수 없는 말의 카랑카랑한 잎사귀들. 동부새를 소소리바람을 동풍을 안으려 흰 겨울 비탈에 서는 이가 그렇게 온몸 흔들리며 안간힘 하며 휘젓는 칼날의 춤. 마구, 또 기어이 일어나 제 온몸의 빗자루로 서서 성긴 적멸의 어둠을 쓴다.”

사물과 사람 그리고 시간의 상응(相應)으로 빚어진 삶의 비의가 깊이 새겨진 작품이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지만, 사랑의 말은 여전히 동튼다고 쓴다.”라는 시인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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