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문을 받치는 대석단과 청운교 백운교 (좌)자하문 좌측 석조 낙수대(우)
불국사 자하문(紫霞門)은 대웅전으로 들어서는 중문이다. `삼국유사`에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에 의해 창건됐다고 기록되어있으며 세종 때 중창한 이래 여러 번의 중건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하문 안에 걸려있는 현판 `자하문중창기`에 따르면 정조 5년(1781)에 자하문 중수공사를 시작해 그해 7월에 완성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자하문 아래 백운교(白雲橋)를 올라가면 좁은 쉴 참이 있고 다시 넓어지는 바탕이 조성된 후에 청운교(靑雲橋)가 가교(架橋)되어 있다. 이 청운교를 올라서면 석가여래의 이상향인 사바세계로 들어서는 중문인 자하문에 이르게 된다. 자하문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불국사고금창기`나 `불국사사적기`에서 `동방제일의 석대`(石臺)라고 찬탄한 것처럼 높은 댓돌 위에 지표로부터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자하문은 1고주 7량가로 하부구조인 기단과 주초석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이고 상부구조인 목조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평삼문 형식의 18세기 건축양식이다. 상부가구의 구성은 중앙고주와 전후주 평방 사이에 소꼬리 모양의 2개의 우미량을 걸어놓았는데 특히 고주와 전주의 평방사이의 우미량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걸어 놓았다. 대목(大木)의 숨은 애환일까. 꼭 찾아볼만한 구조이다.

한편, 국보 제23호로 지정된 33단의 청운교와 백운교는 불국사 창건 때 세워져 1686년과 1715년에 중수되었고, 1973년에 훼손된 난간을 복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3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아직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33가지 단계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불국사 내방객들이 저만치 떨어져서 청운교·백운교 댓돌 위에 높이 솟은 자하문을 바라만 보면서 법당 앞의 중문(자하문)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그 우측으로 돌아 대웅전 동측 회랑을 가로질러 대웅전 영역에 들어설 수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또한 자하문 전면의 축대를 대석단(大石壇)이라 한다. 대석단을 굳이 다리라 부르는 이유는 석계단 아래의 세계와 다리 위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인 것 같다. 다리 하부를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arch)로 만들어 주변에 직선으로만 구성된 석기단의 딱딱해 보이는 시선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있다. 원래는 다리가 있는 석축 아래쪽으로 구품연지(九品蓮池)로 흘러드는 물이 이 아래를 통과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계단 왼쪽 난간 아래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반원형의 돌로 만든 낙수대(水臺)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처럼 부서지는 물보라에 의해 무지개가 떴다고 하니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옛 불국사를 그려보게 된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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