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람 그리워 모인게 40년 됐지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어린 시절, 또는 직업상의 이유로 상경해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먹고살기 바쁜 시절 `고향`이라는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한국인의 가슴에는 늘 고향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는 말처럼, 늘상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북매일에서는 `재경`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순서로 포항의 장기향우회를 만나보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대도시에 살았던 기자가 놀란 이유는 포항시의 한 면인 장기면의 향우회가 있다는 사실.

하지만 지난 신년교례회에서 이병석 의원이 했던 “포항시에는 3명의 원님이 있었다. 장기현, 흥해현, 청하현 등이 그것이다”고 했던 말을 되짚어 보면,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향우회보 26호 발행… 파악된 회원 800여명

등산회로 첫모임… 포털카페등 소모임 활발

매년`자랑스러운 장기인상`대외적으로 수상

◆시작

지난 10일, 본사 주최로 열린 `재경 포항 신년교례회`자리. 오후 9시가 되어 가는 시점에서 왁자지껄한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포항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자랑하는 장기향우회원들이 교례회 이후의 또 다른 모임을 준비하는 자리였다.

며칠 후에 만난 오주훈 장기향우회장은 “약속이 있는 사람은 일찍 가고, 나머지는 남아서 회포를 풀려는 자리였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잊지 않은 한 마디는 “아마도 그 자리에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향우회였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재경 장기향우회는 이미 40년 가까이 된 전통 있는 향우회다. 1970년대 하루 벌어 하루 먹기가 힘든 시절에,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뭉쳐 만든 셈이다. 그러다 보니 향우회에서 자체 발행하는 향우회보만 해도 26호까지 발행이 되었으며 파악된 회원만 800여명이 넘는다.

뿐만 아니라, 포털 카페에 마련된 `장기사람장기학당`이라는 보금자리에도 회원수는 1천700여명이 넘으며 하루 방문객 수만 200명 가까이 되는 소위 `잘 나가는 향우회`다.

오주훈 회장은 “4,50년 전부터 고향 사람이 그립고 해서 모인 것이 이어져 왔다”며 “처음은 등산회로 시작했지만, 향우를 만나는 목적이 고향의 정과 바닷가에 나는 갯냄새, 그리고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모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 회장은 “향우회원을 만나면 고향 사투리부터 바다에서 나는 미역 등의 해산물과 산나물 등으로 점심상을 차려놓으면 뷔페도 이런 뷔페가 없다”고 회상했다.

◆굴곡

물론 40년을 이어오면서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늘상 있는 돈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며 사람들 사이에서의 사소한 다툼이 큰 문제로 번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오주훈 회장은 “고향 사람, 고향 친구라는 것은 귀소본능이 있다”며 “어릴 때 만나가지고 자란 사람은 한번 틀어져도 지나고 나면 예전과 같은 사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특별하게 상처를 입지 않는 사이라면, 언제든지 같이 웃고 떠들고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단순한 고향의 정`이라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결속감으로 인해 다른 이유를 물어보았다. 오 회장은 “인터넷 카페에서도 연결이 되고, 등산모임, 향우회보 등 고향의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소모임들이 많다”며 “여기에다 매년 `자랑스러운 장기인상`을 만들어 대외적으로 수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제1회 자랑스러운 장기인상은 김찬두 두원그룹 회장이, 제2회는 임채홍 변호사가 수상했다.

◆즐거움

장기 출신인들이 이처럼 향우회에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적으로 오주훈 회장은 “즐거움”이라고 얘기한다.

오 회장은 “모임을 가면 많은 회원들이 모인다. 연락해서 나오라고 하면 50명이 모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며 “자부심이라는 것은 여러 사람이 참석을 많이 했을 때 나오며, 애착도 있으며, 봄이 되면 개도 한 마리 잡고, 바닷가를 가기도 하고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도 하면서 지낸다”고 말했다.

그중에서 한 일화를 소개하면, 오주훈 회장의 자택에서 모임을 했다고 한다. 20명 가까이 모인 회원들이 원두막에 앉아 “대가리를 한 번 꺼내라”고 외치며 새벽 4시까지 고성방가를 했다는 것. 다행스럽게도 오 회장의 자택은 오 회장이 경영하는 유림산업과 함께 있는지라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미래

마지막으로 “고향에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굉장히 의례적인 질문임에 틀림이 없었던지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 회장은 이 질문에 기대(?)했던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올해가 장기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이라면서 “비석도 만들고 행사도 계획하고 있는데, 현재 1억5천만원의 예산 중에서 1억2천만원 정도를 모은 상황”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오 회장은 “우리가 학교 다닐 때에는 장기면에 5개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현재는 장기와 양포 2개 뿐”이라며 “우리 향우회가 잘 되어야 한다. 포항사람이 잘 되어야 한다. 그다음에 우리 향우회는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옛날 고향은 장기숲도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돈에 팔촌은 기본이었으며 학교도 거의가 선후배였다”며 “옛날, 일찍 올라온 사람들은 경상도 말만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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