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찬(사) 대구예총 예술소비운동본부장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러시아 사람들은 생필품을 사기 위해 가게 앞에서 뱀처럼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런데도 저녁이면 오페라 극장의 좌석들은 가득 차고 교향악단의 연주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공연장으로 몰려들었다. 공연을 보고 나면 봉고 차 안에서 파는 장미 한 송이를 사서 품안에 넣고 영하 20도가 넘는 거리를 급하게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내일 당장 배고픔을 때울 빵 걱정을 하면서도 오늘 밤 전시회를 가고 오페라 구경을 즐기던 그들의 넉넉함은 고단한 삶 속에서 예술을 즐기고 사랑하는 것이 빵 보다 더 소중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던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예술은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는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단테의 생가를 비롯해 위대한 예술가의 건축과 조각이 거리 곳곳에 즐비한 도시 피렌체는 지붕없는 미술관이다. 르네상스 문화가 탄생한 피렌체는 메디치가문에 의해서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메디치 가문은 열세살에 불과한 어린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평생 후원했으며 레오나르도다빈치, 보티첼리, 갈릴레오 등 수많은 인재들을 후원했을 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 정서와 맞지 않는 괴팍하고 독창적인 예술가들에 대해서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메디치 가문이 부와 명성을 예술과 접목시킴으로써 지금의 피렌체 전부가 예술 작품으로 이뤄지는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1994년부터 기업 메세나 협의회가 발족해 기업들이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개인이나 기업의 활동을 의미하는 메세나(Mecenat)는 작가들을 후원했던 로마의 부호이며 외교관인 마이케나스(Maecenas)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1967년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의 명칭으로 메세나가 쓰이면서 널리 알려졌다.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질수록 가장 위축을 받는 것이 예술 활동이다. 당장 자녀교육비도 없는데 무슨 음악회를 가고 연극 구경을 하고 전시회를 돌아다닐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예술이 죽으면 그 도시도 죽고 만다. 어려움 속에서도 예술을 즐기고 후원하는 마음이 삶의 질곡을 극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약속해주는 것이다. 그 예로 1970년대의 대구 예술계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보릿고개의 흉터가 채 가시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대구는 홍신자, 무세중 등의 전위예술이 자주 열렸던 한국 예술의 메카와 같았다. 그것이 바로 대구의 힘이었다. 그러나 80년대 정치적 정서가 대구를 지배하면서 공교롭게도 대구 예술이 내리막길을 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예술의 퇴보는 경제,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에도 영향을 미쳐 대구의 생존을 위태롭게까지 하고 있다.

예총단위에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구 예총에서 예술소비운동을 펼치는 까닭은 척박한 대구 예술의 현실을 좀 더 실질적인 방법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해서이다. 대구 예술의 소비운동은 머리맡 책 갖기, 월 1회 이상 공연장과 전시회 가기 등 세가지이다.

대구에서 예술 소비운동은 반드시 성공을 거둬야 한다. 예술의 힘이 없는 경제는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숨바꼭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넓고 호화로운 아파트의 거실에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예술에 대한 한 사람씩의 작은 관심은 바로 거대한 대구의 힘으로 비약해 대구 경제 활성화의 밑거름이며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술 소비운동에는 대구 기업들의 관심과 정성이 참으로 필요하다.

대구의 예술 소비운동은 예술이라는 어려운 관념을 버리고 권위를 벗고 시민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가는 운동이다. 시민들은 예술을 즐기고 사랑하며 동시에 예술가에 대한 경제적 여유를 제공하고 예술가에 대한 예우와 후원이 곧 삶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꿈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밝히는 등불임을 전하는 운동이 바로 예술 소비운동이다.

예술 소비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앞의 3대 행동강령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예술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작은 실천들이 바로 대구를 대한민국의 문화수도로 만드는 첫걸음이며 시민 누구나 메디치가 될 수 있고 메세나 활동을 할 수 있는 명예로움을 선사해주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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