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가 한국에서 집필한 최신작`허기의 간주곡`(문학동네 간)은 르 클레지오가 2008년 가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될 무렵 프랑스에 출간된 그의 최신작으로, 작가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여주인공 에텔의 성장을 그린 아름다운 소설이다.

이 작품은 르 클레지오의 노벨문학상 수상 낭보와 함께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르 클레지오의 펜 끝에서 탄생한 가장 아름다운 초상`(`르몽드`)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허기의 간주곡`은 작가가 서울 체류중에 집필한 것으로도 프랑스 현지에서 화제가 됐고, 그런 이유로 한국 독자들에게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 될 듯하다.

`아프리카인`(2004)이 아버지와의 진정한 화해를 도모하는 동시에 작가로서 르 클레지오가 추구하는 가치의 뿌리를 확인시켜주는 작품이었다면,`허기의 간주곡`은 외롭고 조숙했던 소녀에서 강인한 여인으로 성장하는 작가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르 클레지오라는 한 인간을 이루는 세계의 근원과 그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허기의 간주곡`에서 르 클레지오는 한 여인의 성장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일련의 사건을 고발한다. 제목의 `간주곡`은 `리토르넬로`에 해당되는 프랑스어 ritournelle인데, 리토르넬로는 보통 기악곡에서 솔로 파트 사이에 등장해 반복적으로 연주되는 총주(總奏) 부분을 일컫는다. 즉 작품 전체를 걸쳐 `허기`라는 주제를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함으로써 그 치욕과 부끄러움의 시대에 관해 영원히 잊지 말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허기의 간주곡`은 남성·서구 중심의 물질문명을 반성하고 또다른 전망을 제시하는 그간의 작품들과 궤를 같이하는 동시에 처녀작인`조서`처럼 르 클레지오가 써온 일군의 `가족소설`에 포함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르 클레지오는 `허기의 간주곡`의 주요 뼈대와 디테일들이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들에게서 많은 부분 빚지고는 있지만 상상으로 쓴 허구임을 강조한다.

오래전부터 르 클레지오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던 라이트모티프와도 같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허기의 간주곡`이라는 작품으로 마침내 싹을 틔우게 된 계기는 2009년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지성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의 만남이었다고 한다. 레비스트로스와의 만났을 때 르 클레지오는 그가 그의 어머니처럼 1928년에 열린 라벨의 `볼레로`초연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레비스트로스는 르 클레지오의 어머니처럼 그 역시 `볼레로`를 듣고 인생이 바꼈다고, 그 결과`신화학`이라는 역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볼레로`가 단순한 하나의 음악이 아닌 `하나의 예언`이자 `어떤 분노, 어떤 허기에 관한 이야기`와도 같은 것임을 깨달은 르 클레지오는 그 음악을 닮은 아름다운 `허기의 간주곡`이라는 소설을 탄생시켰다.

“행복하다는 것, 그것은 기억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행복하다는 것, 그것은 기억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불행했을까? 모르겠다.

다만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배불리 먹을 때의 충족감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마침내 깨닫게 되었음을 기억할 뿐.

새하얗고 부드럽고 향기롭던 그 빵, 내 목구멍으로 흘러들어가던 그 생선 기름, 그 소금….

바로 그 순간, 나는 살기 시작한다. 잿빛 세월에서 빠져나와 환한 빛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존재한다. (p. 14)”

소설은 `허기`를 단순히 고통으로 인지하기보다는 교묘한 아이러니를 통해 황홀한 도취, 자유, 생존에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랭보의 시 `허기의 축제`를 제사로 인용하면서 출발한다. 그리고 프롤로그에 해당되는 첫 장에서 르 클레지오 자신임이 분명한 화자는,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속에서의 허기와는 다른 성질의 허기, 즉 육체적 허기에 관한 기억을 독자에게 들려줌으로써 허기가 인간의 삶에 기여하는 의미와 `기억하는 행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허기란 과거를 `잊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고,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생명력과 희망의 끈이다. “행복하다는 것, 그것은 기억할 것이 없다는 것”이라고 극단적으로 말할 만큼 르 클레지오에게 기억라는 것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첫 장을 통해 독자는 이 책이 `허기`와 `기억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임을 예감한다.

이야기는 크게 두 흐름이 교차되거나 병행되거나 겹치면서 시간의 진행과 함께 나아간다. 하나는 세계대전의 불온한 그림자가 유럽을 잠식하기 시작하는 1930년대 초에서 전쟁이 끝나는 1940년대 중반까지의 세계라는 거대한 줄기이고, 다른 하나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외동아이였던 주인공 에텔이 광기 어린 세계의 추락과 가족의 몰락을 겪으면서 “억척스러운 삶의 주인공”이 되어가는 과정, 즉 개인적 역사의 이행이라는 줄기이다. 그리고 르 클레지오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통사적 역사가 아닌 에텔 혹은 에텔과 그 가족의 이야기, 즉 역사와 얽히는 개인의 이야기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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