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대구본부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자신의 싱크탱크를 전격 공개한 것은 새해를 불과 나흘 앞둔 구랍 27일이었다. 그 자신 발기인으로 참석한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 대회에서 그는 “우리나라는 지금 새로운 국가발전의 기로에 있다”고 단정지었다. 그리고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2012년 대선을 향한 닻을 올린 셈이다.

정치인이, 그것도 대권을 꿈꾸는 유력 대선주자가 자신의 참모들을 공개하고 상대 예비후보 진영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야 말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구성원들이 공개되면서 자칫 나라 전체에 편 가르기의 신호로 비쳐질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 공개된 대학교수 중심의 각 분야 78명은 마치 캐비넷 내각 명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또 하나의 거대한 여론집단을 형성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계를 비롯, 경제계와 사회 각계에서 세포분열하듯 조직을 확장시켜 나갈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우리 사회는 국가미래연구원에 포함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경기도 군포를 지역구로 한 3선의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동료의원들에게 보낸 눈물의 편지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김 의원은 민주당 동료의원 86명 전원에게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낙인과 멍에를 제 어깨에서 벗겨주십시오` 라는 친필 호소문을 보냈던 것이다. 그는 지난 해 10월 강원도 칩거에서 돌아와 민주당권을 손에 거머쥔 손학규 대표의 측근이었다. 그러나 그는 “영남 출신에 한나라당 출신이라 사무총장에서 배제됐다고 언론에 보도됐다”며 “왜 영남 출신,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느냐”며 가슴 아파 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도 한나라당 출신이다. 그는 그 흔적을 호적에서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강원도에서 1년 여 닭을 키우면서 칩거했던 여러 가지 이유 중에는 자신에게 붙어있는 한나라당의 흔적을 지우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지난 연말 예산안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된 데 불만을 품고 또다시 장외 투쟁을 선택한 손 대표에게 언론이 한나라당 꼬리표를 떼내려는 정치이벤트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치인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어쩌면 `우리 편, 아니면 적`이란 이분법적 편가름으로 나눠 있다. 옳고 그름이 어느 편이냐에 따라 판정 나고 행동 방향이 결정된다. 소신이나 철학이 아닌 편가름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때 적은 타도와 척결의 대상일 뿐 협상하고 공조할 상대가 아니다. 무조건 나쁘다. 우리 편이 아니니까 주장하는 내용을 살펴 볼 이유가 없다. 옳고, 그래서 잘 될 싹수라도 보인다면 더욱 반대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듯 거칠고 사납다.

박근혜 전 대표의 싱크탱크가 정치적으로 이 나라를 패가름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다. 서로 생각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고 그래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준비하는 생산적 모임이기를 기대한다. 그러면서 그 뜻에 동참하는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여 외연을 넓히고 또 반대하는 사람과도 서슴없이 토론을 벌이는 열린 모임이어야 한다. 정책을 빙자해 지지층을 끌어 모우고 반대 세력을 비난하는 정치단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승자 독식의 우리 대통령제에서 대선을 2년이나 앞두고 유력한 대권 주자가 공개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은 반대 진영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벌써 많은 견제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국가미래연구원이 정치권의 패가름 신호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편 아니면 모두가 적이라는 식의 패가름은 박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도, 또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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