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학은 한때 세계 어느 나라 대학 못지않게 인문고전 독서에 열심이었다. 교수가 수업시간에 인문고전을 원서로 강독하고, 선배가 후배에게 철학고전을 권하고, 대학 4년 동안 고전 100권을 독파하겠다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인문고전 독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베스트셀러를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는 교수, 신입생에게 재테크 서적을 권하는 선배, 무협판타지 소설을 애독하는 학생들이 들어섰다. 누가 우리의 책장에서 인문고전을 치웠을까?

`리딩으로 리드하라`(문학동네 간)의 저자 이지성씨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근대의 영국과 프랑스, 20세기를 지배한 미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막강한 국력과 융성한 문화를 자랑한 나라들이 하나같이 인문고전 독서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실천해왔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그러한 전통이 지배계급의 전유물로 소수에게만 허용됐다는 사실을 추적하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체력 단련과 군사력 증강에만 힘썼다고 알려져 있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스파르타는 사실 운동보다 철학을 더 사랑했다. 플라톤의`프로타고라스`에 따르면 스파르타는 탈레스, 솔론 같은 고대 그리스의 7현인이 부러워하고 칭송할 정도로 최고의 철학 및 변론 교육을 실시했다. 그렇다면 스파르타는 왜 강한 육체만 추구한 국가로 알려졌던 걸까? 자신들의 성공 비결이 새어나갈 것을 두려워한 스파르타인들이 거짓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다.

흔히 인문학을 `돈`과 대척점에 두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고정관념`이자 `환상`이라고 말한다.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해 막대한 부를 일군 경영자와 투자자 들은 모두 인문고전 독서광이었다.

영국 런던 빈민가에서 접시닦이, 웨이터, 페인트공 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던 조지 소로스는 1992년 런던을 떠난 지 36년여 만에 세계 금융계의 황제가 돼 다시 영국 땅을 밟았다. 그는 파운드화의 가치가 폭락하는 순간을 노려 영국 중앙은행에 도전해, 일주일 만에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실패의 나날을 보내던 와중에도 온 힘을 다해 철학고전을 읽었던 조지 소로스는 자신의 투자 성공 비결을 `철학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철학적 사고를 통해 얻은 이론들을 현장에 적용한 결과 나는 주가가 오를 때나 내릴 때나 언제든지 돈을 벌 수 있었다.”

세기의 경영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아이폰 신드롬을 낳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유명한 소크라테스 신봉자이다. “만일 소크라테스와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면, 우리 회사가 가진 모든 기술을 그와 바꾸겠다”고 말할 정도이다.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은 `논어`에서 기업경영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밝힌 바 있다. “가장 감명을 받은 책을 들라면 서슴지 않고`논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의 생각이나 생활이`논어`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해도 오히려 만족한다.”

인문고전 독서와 부의 관계를 밝히려는 저자의 시도는 다음과 같은 동기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는 나쁜 의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시스템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름대로 잘살던 사람을 한순간에 노숙자로 전락시키는 그 악한 시스템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힘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에게 “우리 모두 목숨을 버릴 각오로 독서하고 공부하자. 조상을 위해, 부모를 위해, 후손을 위해 여기서 일하다가 같이 죽자”라고 당부했다. 그 결연한 의지의 밑바탕에는 백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다.

남명 조식은 검을 차고서 책을 읽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나태해진다면 이 검으로 나 자신을 베어버리리라는 각오의 표현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스승 암브로시우스가 독서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두 눈은 책장을 뚫어버릴 듯했다”고 묘사했다.

천재들은 인문고전을 대하고서 자신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아이작 뉴턴은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읽다 벽에 부딪혔고, 수시로 처음으로 돌아가 읽기를 반복했다.

천재 작곡가 바그너는 1천페이지가 넘는 쇼펜하우어의`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처음 접한 해에만 네 번 읽었고, 그 뒤로 평생 반복해 읽어 내용을 전부 외워버렸다.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 또한 같은 책을 40년 동안 반복해서 읽었다.

다산 정약용은 매일 새벽마다 고전을 몇 쪽씩 베껴 쓰는 일을 황홀한 취미로 삼았다. 그는 필사의 효과를 의심하는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백 권의 책이라도 열흘 공부로 끝낼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자신의 통찰력의 근원으로 끊임없는 독서와 사색을 꼽았다. 환희와 함께 찾아오는 깨달음은 진정한 천재와 일반적인 수재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다. 헤르만 헤세는 “공자의`논어`를 처음 접했을 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감격적이었다”라고 고백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입법론`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라고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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