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 / 시인
중·고 시절 제자 정진영양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한 달 후에 결혼을 하게 됐는데 나더러 주례를 서달란다. 내 나이 쉰이 가까운 40대 후반이니 주례를 사양 안해도 건방지다는 말은 안 들어도 될 것 같아 선뜻 승락을 했다. 제자 진영이 같이 착한 학생은 그때까지 교직경력 20년이었지만 찾아보기 힘들었다. 진영이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자매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녔다. 진영이가 다니던 학교는 문경군 산북면 소재지 S중·고등학교 였다. 진영이가 사는 면소재 마을은 가구수가 100호도 못되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진영이네는 농촌에 살면서도 자기 땅이 한 평도 없었고 어머니가 마을 사람들의 한복 주문을 받아 생활을 꾸려 나갔다. 백 집도 안되는 작은마을에 1년에 한복 바느질 주문이 몇 건이나 들어오겠는가. 바느질을 하자면 눈이 밝아야 하는데 진영이 모친은 시력이 아주 약해 바늘끝이 옷감이 아닌 손끝을 찌를 때도 많았으리라.

가난한 어머니 슬하에서도 진영이 자매는 학교에서 조금도 구김살이 없는 모범학생으로 밝게 자랐다. 필자는 그때 산북 중·고등학교의 새마을 주임(환경부장) 교사로서 환경보전활동과 학생문예지도에 정성을 기울였다. 1년에 봄, 가을 두 번 시행하는 불우학우돕기에 봄에는 진영이를, 가을에는 진영이 동생을 선정하여 당시 1만원(현재 10만원) 정도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배려를 했다. 얼마 안되는 푼돈이지만 가난한 모녀에게 조그만 보탬이 되었으리라. 별로 도움을 주지도 못한 못난 스승에게 주례를 부탁해 주니 지난날이 되돌아 보이고 감회가 깊었다. 촌놈인 내가 서울 중곡동 장원예식장까지 원정가서 주례사를 읊조리게 됐다. 그날 진영이 결혼축하를 하러 진영이 친구, 나의 여제자들이 떼로 와서 “선생님, 제 주례도 꼭 서주세요”떼까치 짖듯 했지만 정작 나중에 내게 주례를 부탁한 여제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신부 진영이는 주례를 한 필자에게 구두선물권 1장을 손에 쥐어주었다. 교직 20년이 넘도록 구두선물권을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사는 점촌에는 백화점이 없어서 대구까지 큰맘 먹고 가서 대구백화점에서 비제바노 구두를 골랐다. 선물권의 액수를 맞춰 사다보니 통배같이 멋적은 구두를 고를 수 밖에 없었다. 보기와는 달리 신어보니 발이 더 없이 편하고 제자 진영이와 늘 동행하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했다. 진영이는 특활반도 문예반을 선택해 내 문학세계의 영향을 받았다. 진영이는 고2시절에 한글학회에서 모집한 문예작품공모에서 경북도 입선과 전국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진영이는 상업을 하는 신랑을 만나 처음부터도 잘 살았지만 성장기의 시련이 바탕이 돼 근검절약을 해 남부럽지 않게 지금도 잘 살고 있으며 진영이 자매를 키우기에 정성을 다 쏟으신 친정어머니를 직접 모시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니 너무 고맙다. 진영이의 구두선물권 이후로 나는 백화점의 구두보다 재래시장 노점에서 파는 3만원만 주면 사는 구두의 단골손님이 됐다. 다른 사람보다 많이 걷는 편이지만 구두 한 켤레를 사면 거뜬히 1년은 버틴다. 신문에 나는 고가 구두광고를 보면 닭살이 돋는다. 점촌 재래시장 구두장수노인을 1년에 한번 뵈면 반갑다. 그 분도 나를 자기의 단골로 알아본다. 작년부터 단골 구두장수를 시장에 가서 아무리 살펴도 보이지를 않는다. 그 자리를 물려 받아서 구두노점상을 하는 중년의 사장님게 물어보니 그 구두노점사장님이 연세가 많아 넉달전에 그 자리를 중년의 사장님께 물려주고 한평생 종사했던 정든 직장을 그만 두셨단다. 나는 그날부터 새로운 구두방을 찾아 다시 헤매야 했다.

제자 정진영이는 이제 대학생의 어머니가 됐다. 자랄때 어머니께 착하기만 했던 정진영이기에 그 자녀도 더없이 착한 효자일 것이다. 왕대밭에 왕대나고 효자 가문에 효자가 난다. 단골 구두장수노인도 폐업을 했지만 나는 진작 2004년 8월31일에 중등교육계에 폐업신고를 했다. 나의 정년퇴임을 뒤늦게 안 제자 정진영이가 내게 순금 닷돈짜리 `행운의 열쇠`를 쥐어주다니! 진영이가 준 행운의 열쇠를 가지고 폐업의 비운을 극복하고 새로운 행운의 문을 활짝 열리라. 황금같이 변할 줄 모르는 `사제의 정`이 세월이 갈수록 더 눈부시기를 간구해 본다. 폐업은 새로운 창업의 출발점이다. 변함없는 사제간의 끈끈한 정앞에 폐업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앞으로 남은 세월도 사제의 행진곡이 이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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