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락 / 포항장성요양병원장
운명이란 어떤 남녀가 사귀다가 끝을 낼 때 “우리는 헤어져야할 운명인가 보다”하는 것과 같이 인간이 미래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고칠 수 있지만, 체념하면서 소극적으로 받아들여 버리는 것을 말한다. 근래와 같이 자기의 주관과 의지가 강한 때에는 운명이란 단어가 그리 쓰이지 않는다.

세상을 살다보면 원인 모르게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일어나는 것을 팔자라고 한다. 사람의 출생 순간의 시점, 처음 숨을 쉬는 땅과 지역의 음양오행의 기운여하에 따라 그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즉 사주팔자란 출생 순간과 장소에 따라 인생의 설계도가 만들어 진다고 믿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숙명의 라이벌, 숙명적인 앙숙 관계 등 숙명이라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작용할 틈이 없이 불가피한 필연의 결과로 생겨나는 일들을 표현하는 단어다. 인간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궁극적인 존재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숙명이라고 말한다. 이는 무한한 노력으로도 벗어날 수 없다. 숙명 중 제일 큰 것이 인연이란다.

근래에는 유전자 조합으로 새로운 생명을 만든다거나 복제 송아지, 또는 생명치료법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생명체의 숙명을 인공으로 바꿔 버리는 것이 된다. 숙명론은 일견해 결정론과 비슷하다.

결정론에서는 모꿔 일이 각각의 원인에 따라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반드시 일정한 결과를 가져 오도록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5+6=11이고, 다른 답은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결과가 미래의 원인이 되고, 모든 것들은 이미 그 이전에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무속은 인간의 궁극적 문제를 다루고 사후 세계를 다루며, 따르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도덕적 율법이나 성문화된 경전이 없어서 제일 하등의 종교라 할 수 있다.

위에 기술한 모든 것은 인간의 소극적 대응일 뿐 적극적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들은 모두 자기의 이득을 구할 뿐이다.

이런 것들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정론과는 정반대편에 위치한다. 예정론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는 이미 하나님만 아시게 예정되어 있는데 우리 인간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의지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가 있고, 그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아가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사고범위를 초월한다는 것이다. 자유를 사용한 결과의 좋고 나쁨을 하나님이 평가한다는 것이다.

종교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이타의 정신으로 살아갈 때가 가장 선하다는 것과 개인의 노력으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종교는 자기의 이득을 앞세우지 않는다.

기도는 이득이 되는 것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득이 중심으로 될 때 미신은 개입을 시작하고, 종교의 목적인 영원한 행복은 멀어지게 된다.

이 사회에서는 미신이 횡행한다. 종교는 `산모가 언제 끝날지 모를 고통을 통해 옥동자를 출산`하듯이 고통을 직시해 외면하지 않고 극복하려 하는데 비해 미신은 고통에서 도망치게 한다. 또 미신은 사람을 현혹시켜 경제적 착취의 모습도 보인다.

`내가 태어날 때는 나 하나만이 울고 다른 이는 미소 짓지만, 죽을 때는 나는 미소 짓고 다른 이는 슬퍼 우는 성실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운명론이나 숙명론은 체념적인 것이다. 종교가 인간에게 있어서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미래지향의 방법을 제공해 준다. 완벽이 100이라면, 종교는 그 자체가 100이고, 미신은 0+0+0+0…. 해도 그 답은 0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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