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쏟아지는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이 방을 凌雨軒이라 부르겠다

능우헌에서 바라보는 가까이 모여 내리는

비는 다 직립이다

휘어지지 않는 저 빗줄기들은

얼마나 고단한 길을 걸어 내려온 것이냐

손톱이 길게 쩍 갈라졌다

그 사이로 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누런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치마를 펼쳐 들고 물끄러미 그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입은 두꺼운 삼베로 된 긴 치마

위로 코피가 쏟아졌다

입술이 부풀어올랐다

피로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독약인 것을

꿈속에서조차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일까

속이 들여다보이는 窓봉투처럼

명료한 삶이란

얇은 비닐봉지처럼 위태로운 것

명왕성처럼 고독한 것

직립의 짐승처럼 비가 오래도록 창밖에 서 있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2004)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 풍경을 배경으로 한 이 자화상에 관한 시는 시적화자의 내면과 내리는 비가 긴밀하게 호응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비와 자화상 속의 내가 일치감으로 느껴지게 하고 있다. 고단한 길을 내려온 비와 고단한 삶을 살아온 삼베옷 입은 자신과 일치감을 느끼며, 아지는 비를 바라보는 시인의 가슴엔 말할 수 없는 동경과 연민이 차오름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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