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벌써 2010년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있다. 정말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말 그대로 쏜 화살처럼 빠르다는 이야기 일거다.

올 해가 가기 전에 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약 3개월 동안 틈틈이 시간만 나면 읽은 책이다. 바로 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40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으로 정의와 철학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읽었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독자들의 지적 수준이 높아졌다고나 할까, 아니면 누군가가 지적했듯이 정의로운, 바르고 의로운이라는 이 당연한 말이 가치를 지니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의 사회가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불만과 사회적 정의에 굶주려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튼 부쩍 정의와 공정이란 말이 우리 주위에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학교 정치철학과 교수인 마이클 샌델교수로 이전에 EBS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최고의 교수`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이 `정의란 무엇인가`는 이 시대의 `최고의 교수`에 의한 명강의인 셈이다.

책을 펴면 샌델교수의 가설부터 시작된다. 당신은 전차 기관사이고, 시속 100km로 철로를 질주한다고 가정해 보자. 저 앞에 인부 5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다. 전차를 멈추려했지만 불가능하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속도로 들이 받으면 인부들이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알기에 절박한 심정이 된다. 이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1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1명이 죽는 대신 5명은 살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러한 가설은 책 곳곳에 널려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이 가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있는 구경꾼이라고 가정하자. 전차가 인부 5명을 들이받기 직전이다. 피할 수 없는 재앙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다가 문득 당신 옆에 서 있는 덩치가 산만한 남자를 발견한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 전차가 들어오는 철로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남자는 죽겠지만, 인부 5명은 목숨을 건질 것이다. 당신이라면 그 남자를 떨어뜨릴 수 있는가. 여기에 또 하나의 가설이 있다. 만약에 인부들이 전차를 발견하고 제때 옆으로 피했다면….

책을 읽어 가면서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삶은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에 관한 이견이 가득하게 마련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낙태 권리를 옹호하나 또 다른 사람은 낙태를 살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동성연애도 마찬가지 이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이밖에도 소득에 따른 차별과세, 대리 출산, 장기 판매 등의 여러 가지 민감한 사항들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정의`에 대해 고민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럼 `정의`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니, 첫째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둘째 바른 의의, 셋째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 넷째 플라톤 철학에서 지혜·용기·절제의 완전한 조화를 이르는 말이라 되어 있다.

`정의`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려는 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돼 동양에서는 노자, 장자를 비롯해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도 깊은 탐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없다.

아니 어쩌면 개인이, 사회가, 나아가서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정의`는 달라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의`를 위한 절대적인 가치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든지, 절대로 부정한 짓을 하지 않겠다든지 하는 도덕적 가치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정의`에 대해 다함께 고민하고 논의 될 것을 기대해 본다. 그래서 보다 나은 삶의 질의 향상과 정의로운 사회가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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