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규의 두번째 시집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문학과 지성사 펴냄)이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그간 여러 매체를 통해 발표한 시들과 자신의 블로그에 연속 등재한 장시`문` 등 13편의 시들로 꾸려져 있다. `불안`이라는 마음의 질서를 숨기지 않은 채 언어의 본질로 접근해가는 이 시편들은 그가 얼마나 내밀한 질서로 시를 써내려가는지 잘 보여준다. 끝임없이 변주되고 변용하는 시어들,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기억과 망각이 나와 타인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세운다.

이준규는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죽자고”말한다. 공존을 위한 공멸이다. 슬프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의 시는 언제나 그렇다. 아름답게, 함께 사라진다. 그의 첫 시집 `흑백`은 이토록 처연한 노래의 책이었다. 그 무엇이든 망설임 없이 접근하는 그의 태도에 시집을 읽는 우리는 당황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 거의 대부분은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 타자와 나의 거리가 붕괴된다. 이준규는 이처럼 한없이 투명한 언어로 모든 거리를 극복하는 시를 써왔다.

그렇다면 이번 시집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은 어떨까.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시선의 가능성, 시적 주체가 가지고 있는 감각 반응의 범위를 더 넓힌다. 그렇게 넓어진 감각을 통해 세계를 응시하고 그 이면과 이면의 이면으로 연결되는 긴 통로에 몸을 던진다. 그 속에는 `분신`이 있다. 그것들은 시인 속에 내재된 `시`다.

이준규는 지금껏 타자와 나의 경계의 해체, 그 관계의 투명성에 골몰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으로 시작한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문`이란 경계·단절의 상징이다. 잠겨 있건 열려 있건 그것은 `사이의 존재`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준규가 내민 시는 바로 `문`이다. 그간의 그 무수한 노력을 마치 손바닥 뒤집듯, 그는 `문`을 말하고 있다. 단숨에 모든 관계가, 관계의 사이가 명료해진다. 그러나 이는 배반도 번복도 아닐 것이다.

시집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의 특징 중 하나는 반복이다. 그는 시 도중 새 이름이나 나무 이름을 반복하거나(`문`) 같은 구절을 반복한다(`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이 리듬은 언어를 음악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정황을 읽는 이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반복은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자주, 많이 진행된다.

이준규의 시는 동일성과 차이, 즉 “반복의 문제는 기억과 망각”이라는 문제에 닿아 있다. 재생은 반복이지만, 그것이 재구성이라는 점에 주목할 때 그것은 차이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반복 혹은 한편 더듬거림 혹은 애씀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고 시적 구조에의 편입으로도 읽을 수 있다. 시인은 어떤 단어에 문장에 정황에 매혹된 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한다. 이때 그를 `두근거리게 만드는 말`들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언어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또 다른 장시이자 표제작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은 그 이유를 분명히 드러낸다. 삶은 무수히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남다른 사건들은 매혹과 유혹 앞에 반복되고 무한하게 재생된다. 비록 그 간극 사이 어마어마한 시공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내가 너를 부정하는 계절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난바다의 오징어배가 돌아오는 계절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내가 너의 엉덩이 살을 엿보는 계절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청주를 마시고 울다가 체하는 계절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너를 잃는 계절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일견 몽환적이기까지 한 한 구절의 반복은 우리의 아득한 시공간을 단숨에 압축한다. 인류는 단 한 번도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을 건너 뛰어본 적이 없다. 혹시 잊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때 우리의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은 그러므로 “너를 잃는 계절”이고, “청주를 마시고 울다 체하는 계절”이며 “내가 나를 부정”하는, 그런 계절이다. `이 결정적 언어(구절)`는 초월적이다. 압축적이고 함축적이다. 시에 실리고 무한하게 반복됨으로서 `우주적 언어`의 생명을 갖는다. 동시에 그것은 끝없는 재생이고, 차이이다. 한편 이준규는 이번 시집의 앞뒤에 자신의 서정을 맘껏 풀어놓기도 한다. 너와 나 그러니까 우리에 대한 슬픈 시선이 담긴 `그러나 너는 나비`이준규가 저 모던한 시인 김춘수나 오규원의 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휘파람새` “검은머리방울새는 오리나무숲에서 죽었다”라는 슬픈 문장으로 끝나는 `검은머리방울새` 등 그가 이 시집에 다 실어내지 못한 그만의 슬픔의 정수들이 모여 있다. 특히 첫 시집에 포함되려 했다가 이번 시집의 말미를 장식하게 된 절창 `새앙각시` 그리고 결국 시집의 닫는 문이 된 시 `그는`은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여운을 우리에게 남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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