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수 / 신부·성요셉복지재단 상임이사

얼마 전 노벨평화상 수상식에서 유난히 눈에 띠는 장면이 있었다. 빈자리였다. 류사오보(劉曉波)가 평화상을 수상하고 앉을 자리였다. 그러나 그 빈자리에 메달과 노벨평화상이 놓여졌다. 매스컴에서는 중국 인권의 현주소라고 꼬집고 있다. 그런데 침묵하는 중국의 매스미디어 가운데 남방도시보가 1면에 평화상을 상징하였다 한다. 관련기사 없이 학(鶴) 평평한 바닥(平) 손바닥(掌)을 표시하여 발음상 평화상과 연관되게 했다.

인도의 수학자 브라마굽타는 숫자 `0`을 슈나(shunya) 즉, 공백 부재를 표시했다. 공백을 표시하는 그 부분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에 의하여 새롭게 될 수 있는 가능성도 포함된 것이다. 류사오보의 부재, 앞으로 중국 인권과 평화가 개선되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비리 여파로 연말 사랑의 온도계가 지펴지지 않고 있다. 신뢰를 잃은 결과로 여겨진다. 깨어진 신뢰의 자리에 다시금 신뢰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이가 있다. 10억원을 기부한 가수 김장훈씨이다. 기부천사라는 별칭을 얻은 그는 재단의 비리에 마음 아파하였다. 그렇지만 “기부는 도움이 필요로 하는 그 누군가에게 하는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작은 나눔과 재능의 나눔은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살아갈 힘이 되는 것이다.

성탄을 앞두고 애기봉 등탑에 7년의 공백을 깨고 불이 켜졌다. 2004년 6월 제2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소등을 하였으나 천안함사건과 연평도 도발로 그 의미가 쇠퇴되었다. 북녘의 개성까지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지만 북녘의 동포들 가슴에도 그리스도평화의 빛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라는 이사야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이 땅에 구원의 은총이 전해진 이래, 대구에 교구가 설정된 것은 2011년 100주년이 된다. 대구에 부임하는 드망즈 주교에게 뮈텔 주교는 “나눌 재산이 없으니 가난이나 함께 나누십시오”라고 인사했다. 가난한 교구의 교구장으로서 “신뢰하고 일하라(Confide et Labora)”를 사목지표로 삼고 기도하며 일하여 오늘의 터전을 닦았다. 특히 방인성직자 양성을 위해 성유스티노신학교(1914년)를 세웠고 중국신학생까지 양성하였다. 나라를 잃은 시대 남방 최고의 고등고육 기관으로 그 후신은 대구가톨릭대학교이다.

첫 교구장 드망즈(안세화) 주교님 이래 열 번째 교구장을 맞이하였다. “부족한 제가 사제가 되고, 주교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오늘 대교구를 맡을 대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서고, 떨림과 걱정이 앞섭니다. 하느님께 의탁하면서 동료사제들의 도움과 사랑을 믿고 교구장직을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저에게 더 큰 짐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선택하신 만큼, 그 선택을 믿고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조환길 대주교는 대구대교구 제10대 교구장으로 임명받고 하신 일성이다.

고(故) 최영수 대교구장의 사임으로 1년 2개월여 교구장좌가 비어있었는데, 좋은 목자를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20일 교구장 착좌식이 있다. 사제단과 일치 가운데 교회의 사명인 복음화, 새로운 100년을 향한 전환점을 교구민들과 함께 이루시길 기도드린다. 나아가 지난 100년의 하느님 은총을 되돌아보고 그 역사적 의미를 이 시대에 살려서 하느님사랑이, 도움이 필요로 한 이들에게(장기기증·해외아동결연사업·다문화 지원 및 북녘의 동포 등) 나누어지기를 바란다.

성당에서는 아기예수님을 맞이할 빈 구유를 준비하고 있다. 세상 구원의 빛이신 예수님을 맞이하려는 마음에 사랑과 평화로 채워 주시기를 두 손 모은다. 빛으로 오시는 분이 우리가 세상을 데울 빛이심을 깨우쳐 주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