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세계적인 건축가 오스카르 니마이어가 15일(현지시간)로 103번째 생일을 맞았다.

니마이어는 이날 리우 데 자네이루 시 니테로이 지역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새로운 재단 기공식을 갖고 생일을 자축했다.

4천㎡ 넓이의 재단에는 `오스카르 니마이어 재단` 사무국과 `연구조사·문서기록 센터`, `오스카르 니마이어 건축·인간 학교` 등이 들어선다. 이 재단은 니마이어가 니테로이 지역에 세운 6번째 건축물이 되며, 이밖에도 현재 3개 건축물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오스카르 히베이로 데 알메이다 데 니마이어 소아레스 필료`라는 긴 본명을 가진 니마이어는 1907년 12월 15일 리우에서 태어났다.

리우 소재 국립미술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고 1934년 브라질 근대건축 운동을 이끈 루시오 코스타의 사무실에 취직했다. 코스타와 함께 일한 1937~1943년 사이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자문을 받아 브라질 최초의 근대 건축 대작으로 꼽히는 교육보건부 청사를 설계했다.

니마이어는 이후 다양한 설계작업에 참여했으며, 1947년에는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건물 설계작업에 브라질 대표로 참가했다. 1956~1961년에는 브라질 행정수도인 브라질리아 정부청사 건축을 맡은 설계회사 노바캅(NOVACAP)의 수석 건축가로 일하면서 대통령궁 등을 설계했다.

1961년부터 개인작품 활동에 들어가 프랑스 파리와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동안 1966년 프랑스 니스 인근 그라스 시의 설계를 맡았고, 파리의 프랑스 공산당 당사를 설계하기도 했다.

1968년부터 리우 연방대학에서 강의를 맡으면서 브라질리아의 국방부 청사(1968년)와 알제리 국민당 중앙당사(1976년)를 설계했다.

항상 혁신적인 건축양식을 추구했던 니마이어는 세계적인 건축상을 여러 차례 받았으며, 1963년에는 레닌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니마이어는 21세 때인 1928년 아니타 발도와 결혼해 2004년까지 76년간을 해로했으며, 딸 하나를 두었다. 98세 때인 2006년 11월 자신의 비서이자 40세 연하인 현재의 부인 베라 루시아 카브레이라와 재혼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요통과 신장결석으로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지만 그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축구대회 경기장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며 리우 시내 빈민가 정비계획에도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