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무웅 평론 `문학과 시대현실` 창비 刊, 668페이지, 2만원

1964년 등단한 이래`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까지 세 권의 평론집을 상재한 바 있는 문학평론가 염무웅<사진>이 15년 만에 평론집 `문학과 시대현실`(창비 펴냄)을 출간했다.

민족문학론을 위시한 우리 문단의 주요한 문학담론을 기획하고 실천해온 저자는 단순 이론 생산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활동하는 비평가로 현대 한국문학사의 산증인이다. 긴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방대한 깊이와 분량의 이 책은 지난 20세기와 21세기의 첫 10년 한국문학의 지형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줄 뿐 아니라 원로 평론가의 섬세하고 자상한 독법을 통해 한국 문단에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애정의 시선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독일문학을 전공했음에도 긴장을 놓지 않고 꾸준히 발표한 평문들에는 한국문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애정이 배어 있으며 평생 독문학자로서 연구하고 강단에 서며 느낀 소회를 담은 글들에는 외국문학 연구의 정체성과 고민이 녹아 있다.

`문학과 시대현실`은 모두 5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에는 김광섭 임화 김팔봉 최하림 등 작고문인들의 작품을 다루고 있는데 단순 평문에 그치지 않고 학술적인 가치가 상당한 글들이다. 특히 한국문단에서 자취없이 청산되었던 임화(林和)를 논하면서는, 여전히 냉전시대의 잔재와 문학주의적 편견으로 말미암아 올바른 해석에 한계를 보여준 국문학계를 향해 경종을 울릴 만한 문제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을 담지한다. 그러면서 카프 활동과 이후의 친일 논란 등으로 얼룩진 이력으로 인해 문학적 성과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던 임화의 정치적 문학적 노선을 통합해 총체적인 연관성을 놓고 연구하자는 제안을 펼친다.

제2부는 고은 신경림 조태일, 세 시인의 시세계와 문학적 동지로서 함께 호흡하고 지켜본 인간적인 면모까지를 그려놓은 글들이다. 2010년 완간한 고은의 `만인보` 창비시선의 시작을 알렸던 신경림의 `농무`에 대한 밀도 높은 평문들을 읽어보면, 두 작가에 대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일가를 이루었다고 평가해 마땅할 것이다. 이시영부터 박성우까지 중견에서부터 젊은 시인들의 시세계를 살펴본 제3부의 글들에는 시정이 사라진 혼탁한 세상에서 외로이 고투하는 후배 시인들을 향한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정이 넘친다.

제4부는 1995년 한 해 동안 발표된 소설을 대상으로 `창작과비평`에 연재했던 계간평과, 김정한·송기숙 등을 읽으면서 농민소설의 운명에 대한 글들을 모아놓았다. 1995년이라는 특수한 시점에 살아 숨쉬는 오늘의 소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현장비평을 게을리하지 않는 저자의 노고를 확인할 수 있는 글들이다.

마지막 제5부에는 6·15민족문학인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내면서 북한 문단과의 교류의 기록을 담은`하나의 문학사를 향하여`, 1970년대 어두운 정치 상황 아래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천상병 강빈구와의 사연을 담은 `과거사 한두 장면` 등의 단평들과, 평생 독문학자로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고민했던 외국문학 연구의 정체성과 전망을 담은 글들이 묶여 있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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