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45·사진)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첫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실천문학사 펴냄)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순수, 영원, 사랑의 열망을 때로는 `연시 풍`으로, 때로는 `전위시 풍`이나 `명상시 풍`으로 들려준다. 그리하여 그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본래적인 것들의 환원을 꿈꾸게 만든다”(오세영 시인).

방민호 교수는 1994년 제1회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문학평론가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4월 `옥탑방`, `사랑의 흔적`, `시간을 거꾸로` 등의 세 편의 시가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시인의 길에 접어들었다.

모던한 시대감각을 바탕으로 운율과 어조를 중시하는 서정적인 시를 써왔던 방 교수의 이번 시집은 시 등단 10년 만의 첫 시집이다.

방 교수의 시는 인간이기에 숙명처럼 따라올 수밖에 없는 보편적 `부재`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시는 고립의 나날, 가슴이 병들어 있던 시간, 구름처럼 먼 곳을 떠돌던 시간 속에서 솟아”났다는 `시인의 말`에서 짐작되듯 그의 시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쓸쓸한 한 폭의 정물화로 보인다.

“당신은 내 아픈 눈동자 속으로 내 안에 들어와 /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 당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 당신이 가라는 곳으로 가 / 당신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오” _`빙의` 부분

부재 대상과 “빙의”함으로써만 현실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 이렇게 고립되고 병든 시간을 견딘 그의 시에서는 일면 모던한 지식인의 초상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 단초가 바로 시적 화자와 베냐민을 동일시한 `나의 베냐민`이다. 베냐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수많은 메모로 19세기 파리를 몽타주화한 것처럼 `탑 클라우드`, `보보호텔`, `MAUM` 등 길거리에 늘어선 입간판들은 시적 현실에서 부재하듯 존재하는 부유물들의 형상을 몽타주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반지하방`, `겨울 동물원`, `옥탑방`, `수족관` 등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게 존재하는 사물의 공간에 포섭된 시적 화자의 모습에서 `부재`를 느끼는 상실자의 포즈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박하지 못하는 내 혼은 환영 같은 탑 클라우드를 타고 흔들리면서 흘러가면서 얇고 가느다란 여인의 향기로운 수풀 속으로 스며드는 꿈을 꾼다” _`탑 클라우드` 부분

평론가 홍용희는 이 시집을 “이별의 하염없는 상실감” 또는 “사랑의 에테르”로 발효시킨 포자로 감지하며, 그렇기 때문에 “환상적이지만 현실이고, 부도덕하지만 순수하고, 외설적이지만 천박하지 않고, 감상적이지만 진정성으로 가득”하다고 평한다.

65편의 시를 담은 이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장난 그리운 아이 눈빛으로`에는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시편을 모아놓았다. 제2부 `흔들리면서 흘러가면서`에는 영화나 여행지 등에서 받은 영감에서 비롯된 시편들이다. 제3부 `오늘처럼 세상이 반짝이는 날엔`의 시편들은 내면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간다. 시인의 예민하고 여린 자의식이 엿보이는 시들을 모아놓았다. 제4부 `나도 저 타인들처럼`은 `사회시`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이라크전과 용산참사, 자본주의의 그늘에 가린 빈곤층의 삶 등에 시인의 시선이 가닿아 있다.

“예술이 손끝의 기교와 요란한 수식어에 묻히고 포스트모던도 낡아가는 지금”(최영미), 우리는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를 통해 오랜만에 “서정과 철학을 접목한”(오세영) 담백한 시를 만나는 뜻밖의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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