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재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우리나라 외교를 비아냥거리는 표현 가운데 `사대외교`가 있다. `사대(事大)`는 `큰 나라를 섬기다`는 뜻으로, 제후국 신분을 자처했던 조선이 중국을 천자국으로 받든 데에서 생긴 말이다. 외교란 국제관계 속에서 당당하게 자국의 관심을 달성해 나가는 행위인데, 한미 FTA 협상처럼 우리 외교는 강대국 앞에만 서면 늘 작아지기 때문에 듣는 비판이다. 그런데 이렇듯 부정적인 뜻으로만 쓰이는 `사대외교`의 실제 맥락을 소개한 글을 근래 인터넷에서 접하고 이 말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사대외교의 근간은 조공(租貢)이다. 조공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제후가 천자에게 정기적으로 자기 땅의 토산물을 바치던 예법에서 나온 용어이다. 조공을 바침으로써 제후는 자신이 천자의 세력권 아래 있음을 인정하고, 천자는 이에 답례를 표함으로써 제후국에 대한 제후의 지배권을 공인했다. 사대외교는 이 관계를 중국이 자신과 주변국 사이에 적용시킨 것이다. 주변국들에게 조공을 바치게 해 자신이 천하의 맹주임을 주지시키는 대신, 반대급부로 답례품 하사와 책봉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인정해 준 것이 골자이다.

거래의 기본틀이 이러했기 때문에 주변국의 입장에서 사대외교는 굴욕외교로 받아 들여졌을 것으로 비치기 쉽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전통시대 주변국들은 중국에 다투어 조공을 바치려 했다. 조선이 개국한 직후에 1년에 3번을 주장한 조선과 3년에 1번을 고집한 명나라 사이에서 조공 회수의 적정성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던 것이나 10년에 1번이 할당된 일본이 1500년대 중반 이를 지키지 않고 기간을 줄이거나 답례품을 목적으로 조공품을 늘리다가 명나라로부터 아예 조공 자체를 중지당한 일이 그런 정황을 잘 보여준다.

주변국들이 이처럼 스스로 조공을 바치겠다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비밀은 반대급부로 주어지는 중국의 답례품에 있다. 사대외교에서 조공은 중국을 상국(上國)으로 모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외교적 행위이다. 따라서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국의 체모에 걸맞은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조공에는 받친 물품을 압도하는 공식·비공식적인 하사품이 조공국에 내려지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조공국은 앞선 중국의 문물을 접하는 문화적·경제적 이득을 취했다. 조선을 포함한 중국의 주변국들이 다투어 사대외교를 받아들인 데에는 이런 역사문화적 요소가 배경으로 깔려있다. 전통시대에 중국은 시쳇말로 `퍼주기`를 통해 자국 중심의 천하질서를 유지했던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평화, 즉 `팩스 아메리카나`가 애오라지 군사력에만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일이다.

일정한 국력을 가진 나라가 주변의 약소국들과의 사이에서 자기 주도로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그 주변국이 스스로 자신의 품 안으로 걸어 들어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일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자신을 낮출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음을 역사는 말해준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눈앞의 일은 그것대로 따지고 가려 책임을 물을 건 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거시적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전통시대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강자의 입장에서 `퍼주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중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준다.

노자는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취하는 방법은 자신을 낮추는 데 있으니, 이해관계가 다른 두 나라가 서로 얻고자 하는 바가 있을 때는 마땅히 큰 나라가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햇볕정책`의 공과를 두고 이전투구만 벌일 것이 아니라, 국력이 갈수록 커가는 우리로서는 오늘의 국제관계 속에서 진지하게 되새겨야 할 지혜가 아닐까.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