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이후 5년만에 신작시집 발표
직설적 화법으로 생태계 파괴 등 비판
박이문 시집 `고아로 자란 코끼리의 분노`

철학자 겸 시인인 박이문(80) 포스텍 및 미국 시몬스대 명예교수가 `아침 산책`이후 5년 만에 신작 시집 `고아로 자란 코끼리의 분노`(미다스북스 펴냄)을 펴냈다.

박 교수는 철학, 미학, 생태학 등 여러 분야에서 저작을 남긴 석학이면서 노년기에 시 창작에 큰 정성을 쏟고 있는 시인이다.

이번 시집에 담긴 96편의 시 대부분은 2006년 여름부터 올해 가을 사이에 쓴 것이며 14편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반 발표했던 작품 중 일부다.

생명, 일상, 인생, 이국 그리고 서정 등 크게 4부로 나뉜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인간의 광기로 말미암은 자연의 파괴에 안타까워하며 인간 문명을 고발한다.

젊은 시절의 작품들은 모더니즘의 분위기도 풍기고 있으나 최근의 작품들은 간혹 당황스러울 정도로 직설적인 화법으로 환경 위기를 고발하고, 인간의 야만을 꾸짖는다. 그리고는 근본적으로 시인 자신에게 질문한다. 냉정한 두뇌의 관찰이 심장으로 녹아들어 우주와 자연의 암인 인간의 생태환경을 바라보며 슬픈 심장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 슬픈 심장의 시인은 마지막 불꽃으로, 그 불꽃의 언어로 자신에게,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 의미를 찾고 유지하는 것이 대체 이 세상에서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묻고 있다.

이 시집에는 총 96개의 시가 수록돼 있다.

전 4부로 나눠진 시집은 제1부 `생명`으로 시작해 제2부 일상, 제3부 인생, 제4부 이국 그리고 서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은 창조와 생명의 출발보다는, 이미 창조된 생명의 보존을 향한다.

이른바 생태계의 움직임이다. 생태계에 대한 관심은 곧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며, 그 안타까움은 문명 비판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엄청난 분노로 분출된다.

무엇보다 수록시들은 화려한 수사나 난해한 기교에서 벗어나 있다. 노시인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단순하고 평이한 언어로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아직도 잘은 모르지만/ 비우고 싶다/ 아직도 확실하지 않지만/ 텅 비우고 싶다/모든 것을 아주 털어버리고 싶다/ 암만 해도 잘은 모르겠지만/꼭 알고 싶다/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싶다/ 아직도 무엇인가 허전하기에/ 쓰고 싶다 신선한 시를”(`나의 소원`) 이나 “잘 살려고, 아니 그냥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코끼리를 죽인다/ 사람들은 정력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 코뿔소를 사냥한다/ 사람들은 재미로 동물을 죽이는 스포츠를 즐긴다/ 생명을 죽임으로 삶의 환희를 느낀다/ 인간은 정신병에 걸렸고, 고아 코끼리들은 분노한다/ 코끼리, 코뿔소를 쏘는 밀렵꾼을 쏴라/ 재미로 사냥하는 사냥꾼을 사냥하라/ 생명의 이름으로, 인간의 이름으로!”(`고아로 자란 코끼리의 분노`전문)처럼 온갖 치장을 벗어버리고 본래의 삶으로 돌아와 있는 노시인, 노철학자의 담백하고도 천진한 모습을 수록시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21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철학적 지성이자 당대의 석학인 박이문 교수는 1930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100권에 가까운 철학, 윤리학, 미학, 예술학, 생태학적 저작 및 시집을 출간했다. 박 교수의 시집으로는 `눈에 덮인 촬스강변`, `나비의 꿈`,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1987), `울림의공백`, `Broken Words`,`아침 산책`, `공백의 그림자`, `Schatten der Leere`, `부서진 말들` 등이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미다스북스 刊, 192페이지,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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