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칼` 쿠사나기는 앞선 철 기술 상징”
`연오랑 세오녀 연결 단서는 아직 없어`

시마네 현 사람들에게 이 제국시절의 기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2005년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고 영토에 대한 욕심을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신지호를 따라 이즈모로 가는 군데군데 다케시마를 찾아오자는 푯말이 서 있다. 그들은 그토록 손에 넣고 싶었으나 넣지 못했던 땅과 그 땅을 일시라도 지배했던 시절의 화려했던 기억을 지금 끊임없이 재생하고 있다. 

이비가와(裵伊川)의 다리를 건너면서 이즈모에 왔음을 느낀다. 스사노오미코토와 그 후손들이 지배권을 확보한 곳이다. 마치 형산강의 어느 지점 쯤 되는 듯 착각이 인다. 모래가 곱다.

글 싣는  순서
신화의 무대 日 이즈모시 방문기

<2> 강물은 핏물처럼 변하고

일본의 섬과 땅을 만들었다는 국조신(國造神)은 이자나기노미코토(伊耶那岐命)다. 이자나기는 왼쪽 눈에서 태어난 자식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에게 타카마노하라(高天原)을 다스리게 하고, 오른 쪽 눈에서 태어난 쯔꾸요미에게 요루노오스쿠니(夜之食國)을 다스리게 하고, 코에서 태어난 자식 타케하야스사노오미코토(建速須佐之南命, 또는 素盞鳴尊)에게 우나하라(海原)를 다스리도록 한다.

천상에서 추방당한 스사노오미코토는 이즈모로 내려온다. 이곳에서 스사노오는 국토의 신인 오호야마쯔미노카미(大山津見神)를 도와 야마타노오로치(八大蛇)를 처치하고 그의 딸 쿠시나다히메(櫛名田比賣)등을 취해 자식을 낳는다. 이 때 스사노오가 뱀을 물리칠 때 사용한 검이 토쯔카쯔루기(十拳劍)이고 뱀에서 나온 칼이 쿠사나기(草耶藝)라는 검이다. 일본의 신물이다.

스사노오가 천상에서 내려와 머물던 신라 땅은 소시모리(曾尸茂利)다. 소시모리를 `소머리`(牛頭)로 읽은 학자도 있는데, 우두주(牛頭州)는 춘천의 옛 이름이다. 경남 거창에도 우두산이 있고 경북 예천에도 우두산이 있다고 한다. 스사노오는 이즈모의 히강(肥江)의 상류 토리카미(鳥髮)에 내렸는데 이곳은 고대 최대의 사철단지였다. 스사노오가 야마타노오로치(八大蛇)를 처치할 때 강이 핏물처럼 변했다고 했는데 이는 사철을 다량 함유한 이비가와의 물빛을 형상한 것일 수 있다. 스사노오는 신라에 있던 제철집단이 이곳으로 이주해 온 것을 전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쿠사나기는 앞 선 철 기술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스사노오와 연오랑세오녀를 연결할 단서는 아직 없다. 그렇지만 만일 연오랑과 세오녀가 영일만에서 출발했다면 오키(隱崎)섬을 거쳐 이곳에 왔을 것이다. 규슈지방이 가야와 백제의 `왜(倭)`였다면, 이즈모는 신라의 `왜(倭)`였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즈모 지방에 진출한 세력들은 철의 생산과 수입을 통해 강력한 정치세력을 형성했을 것이고, 이후 야마토 계열에 흡수되어 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비(裴伊)천의 다리를 건너면 우산처럼 생긴 하얀 돔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이즈모돔이다. 기억의 재생은 이즈모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이즈모는 `신과 나무의 도시`로 기억을 재생하고 있다. 이즈모 돔은 세계적인 목조경기장인데 어린이들로 하여금 개관식을 하게 해 주목을 받았다. 구름의 도시 이즈모답게 `뭉게구름 돔`이라고 한다. 시는 주요 건물들을 나무로 만들었다. `이즈모 구니비키 일본 대학 초청 로드 릴레이 대회`라고 하는 역전마라톤도 열고 있다. 국토유인신화에서 창안한 것이다. 약칭이 `이즈모 가미덴`(神傳)이다. 이즈모는 바다로 지는 해, 산으로 지는 해, 강으로 지는 해, 호수로 지는 해, 평야로 지는 해 등 모든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이즈모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시청광장에는 소바(そば)축제가 열리고 있다. 일본 토속 소바를 한 자리에 모아 놓은 것이라고 했다. 시장은 포항의 불빛축제에도 다녀왔다는데, 포항과의 경제교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시장은 먼저 고대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많은 교류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연오랑 세오녀와 일본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내년 봄 200여명의 경제사절을 이끌고 배로 포항에 다녀오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계속)

이상모· (사)도시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