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고 맑은 날이 잦아지면서

저물 무렵 산책이 습관처럼 밴다

거리에 나서서 지는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간다

그곳은 내 고향

떠나온 자는 하루가 바쁘지만

한주일이 더디고 한 달은 가지 않고

돌아가마 약속한 날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 ( 중략 )

까마귀는 이 땅의 무엇이 좋아

저리도 많이 퍼졌을까

나는 깃들일 처마 하나 없고

끈끈한 습기를 몰아 소리 없이 안개비 내리는데

소리 없이 가을은 가는데

고향에서는

주인 잃은 등불 하나 반짝이려나

…. ( 시의 일부분 인용 )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2001)

낯선 곳에서의 외로운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객수(客愁)와 고독감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지. 외부와의 단절, 홀로 침잠할 때 생기는 고독감이야말로 단식을 통해 육체를 비우듯 삶의 온갖 이해득실과 아귀다툼으로 피폐해진 정신으로부터 벗어난 순연한 상태에 침잠할 수 있는 자유의 무한한 계기를 생성해내는 원천이 될 것이다. 어느 가을 저물 무렵 서쪽의 고향을 생각하며 쓴 시인의 체험이 진지하게 녹아난 작품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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