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께 포항 인덕노인요양센터의 사상자들이 후송된 병원 응급실마다 아비규환이 연출됐다. 각 병원 영안실은 황망한 상황을 접한 유족들이 울음바다를 이뤘으며,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찾지못해 큰 혼란을 겪었다.

○…오전 10시10분 포항시 남구 제철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인덕요양센터 화재 피해자 유가족실을 가장 먼저 방문한 유가족은 사망자 정매귀(76) 할머니의 아들 정성근(55)씨와 며느리 유영순(48·여)씨였다.

이들 부부는 이날 오전 6시30분 서울에 사는 동생이 뉴스 자막으로 뜬 사고소식을 전화로 알려줘 사고가 난 사실을 알게 됐다.

정씨는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대보에서 부리나케 달려왔다. 이렇게 큰 사고가 났지만 유가족들에게 연락해 주는 곳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고, 유씨는 “열흘 전 봤던 어머니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며 오열해 유족대기실을 숙연케 했다.

○…사망자 장후불(73) 할머니의 아들 김모(54)씨는 요양원 인근인 인덕에 친척(삼촌)으로부터 화재사실을 전해듣고 급히 현장에 도착했으나 어머니를 찾지못해 한동안 병원들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사망자 및 환자가족들이 너무 많아 어머니를 찾지 못했던 그는 기독병원에 안치돼 있던 시신 중 끝내 어머니를 발견하고 오열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시신이 모두 연기에 그을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나 나나 모두 새끼손가락이 조금 이상하게 생겼는데 이를 보고 겨우 어머니를 확인했다”며 울먹였다.

○…화재참사로 성모병원으로 옮겨진 지적장애자 김모씨는 기초적인 검사 및 치료마저 거부한 채 어머니만을 애타게 찾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씨는 최근 요양센터에 입소한 어머니의 병 간호를 위해 이곳에 왔다가 함께 참변을 당했다.

다행히 확인결과 김씨 어머니는 최근 병세가 악화돼 경주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 화를 모면했으며, 김씨는 특별한 부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참사 후 포항성모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윤모 할머니와 박모 할머니 2명은 오전 10시40분까지 병실이 없어 응급실에서 자신의 가족들을 애타게 찾았다.

특히 박모 할머니는 보호자와 연락조차 안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연신 출입문을 돌아봤다.

○…포항지역 병원 영안실 2곳에는 사고 당시 각별한 우정으로 함께 잠을 자다 변을 당한 할머니들이 안치돼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사망자 중 정매귀, 김복선, 형순연 등 할머니 3명은 원래 2층 거주자였으나, 이날 1층에서 밤늦게까지 담소를 나누다 봉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요양시설 1층에는 거동이 불편한 중증환자가 거주하고 있으며, 2층은 건강상태가 그나마 양호한 할머니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복선 할머니 등 3명은 이날 1호실에 내려와 원 거주자 3명을 포함해 도합 6명과 함께 잠들었으며, 사망자 10명은 모두 1층에서만 발생했다.

현재 김복선·형순연 할머니의 주검은 포항S병원에, 포항의료원에는 정매귀 할머니가 안치돼 있다.

○…환자와 보호자 등이 화재참사 아픔을 추스르기도 힘든 응급실에서 다른 요양원 관계자가 병문안을 핑계로 요양원을 옮길 것을 종용하는 얌체(?) 영업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2개월 전 인덕요양병원에서 근무한 S요양병원 홍보주임 김모씨는 화재참사를 당한 할머니들에게 친근한 말투로 안부를 전한 뒤 요양원 이전을 은근히 권유해 이를 지켜본 보호자들이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김씨는 이에 대해 “평소 아시던 할머니들이어서 병문안 차원에서 들렀지 요양원 이전을 종용할 마음은 없었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번 화재와 관련해 사상자 가족들은 병원 측의 과실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사망자 김희순(71)씨 조카사위 최달원(53)씨는 이번 화재와 관련해 “사망원인은 연기에 의해 질식사한 것으로 보인다. 요양원 측에서 환자들이 야간에 나오지 못하도록 잠금장치를 한 의혹이 높다”며 “분명히 인재”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해외 출장으로 인해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킨 뒤 1년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마주한 한 모자의 사연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사망자 김분란(84)씨의 아들 이재우(63)씨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포항세명기독병원 영안실로 달려와 새까맣게 그을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그자리에 주저안고 말았다.

이씨는 “일본에 출장을 가 1년 만에 어머니를 뵈러 돌아왔는데 아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며 바닥에 주저앉아 내내 눈물을 흘렸다.

/황태진·김남희·윤경보·이준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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