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 시인
우리나라는 농업말고는 대(代)를 이어하는 세업(世業)이 없다. 일본에는 40대(代)를 이어하는 한 약국이 있단다. 비법이 40대를 이어왔으니 틀림없이 용한 약국이란 느낌이 든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도 8대째 도자기를 빚어온 전통도예가문이 있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

한국 최초의 국가지정 중요문화재 105호 사기장 백산(白山) 김정옥(金正玉) 명장이 8대째 가업으로 전통도자기 청화백자를 빚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물론 농담이겠지만 필자에게 김정옥 사기장과 친분이 각별하니 좋은 작품 딱 1점만 얻어달란다. 도자기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릇이 되기까지 흙이 8단계를 거쳐야 한다. 도자기에는 도공의 얼과 숨결과 피땀이 스며있다. 초벌구이는 700도~8백도의 고열 속에서 6~7시간을 거쳐야 하고 재벌구이는 1천2백도~1천3백도의 고온속에서 4~12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가마에 불을 지피기 전에 고사를 지내 치성을 드린다. 이렇게 도자기 제작에는 뼛심이 든다. 도자기는 도공의 노고에 비하면 고가를 주고 사도 오히려 싸게 산 셈인데 노작인 작품을 공짜로 얻어 달란 말은 강도의 심뽀 보다 나을 게 없고 노작을 거저 줄 얼간이도 없다. 백산 선생은 요즘도 일본의 초청을 받아 일본에서 연례행사로 도자기 전시회를 연다. 임진왜란때 일본군은 정책적으로 조선의 도공을 대거 포로로 잡아갔다. 당시 일본 사람들은 목기를 사용했다. 조선 도공의 일본열도 상륙으로 일본 도예의 새벽이 열렸다. 조선의 일반 포로들은 포르투갈 상인에게 포로 2명과 조총 1정을 맞바꿨다. 납치된 조선도공은 한 명도 노예선을 탄 사람이 없다. 일본의 영주들은 포로로 잡혀온 조선도공을 칙사대접 했다. 조선도공이 빚은 그릇은 목기시대의 일본인들에게 날개돋힌 듯 팔려 그야말로 조선도공은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일본 영주들의 극진한 보호를 받았다. 조선인 포로 2명과 조총 1정이 거래되었다고 앞에 잠깐 비쳤지만 일본이 조총을 입수한 것은 1543년, 임진왜란 발발 49년전의 일로 일본은 포르투갈 상인에게 조총 1정을 8억원에 사들여 조총을 모방 대량 생산하여 조선조정도 눈치 못 채게 왜군의 무장 근대화를 이루었다. 황윤길, 김성일 사신팀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 조총2정을 예물로 받았는데 일본 섬 오랑캐가 준 물건이라고 훈련도감 창고에 방치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임진왜란때 조총의 매운 맛을 톡톡하게 보게 됐다.

문경은 조선시대 민간가마가 있었던 곳으로 도자기생산의 자취가 남아 있다. 200년전의 망뎅이가마와 발물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 백산 김정옥 명장은 전통 도예가로 3가지 신기록을 세웠다. 1. 최초의 한국 도예명장 2. 최초의 경상북도 문화상 예술부문 도예가 수상 3. 최초의 한국 중요문화재 사기장으로 선정된 것이다. 8대를 이어온 도자기 가문은 단순한 전통가문이 아니라 가난과 고난에도 꺾이지 않은 인간정신의 승리인 것이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1980년대 까지는 도자기는 가난의 대명사였다. 돈벌이도 안되고 조선시대엔 도공을 점놈이라 하여 천시했다. 위정자와 앵반은 도공을 천대했지만 조선시대 예술의 중심은 공예요, 공예중에도 조선시대엔 백자가 으뜸이었다. 백산 김정옥 사기장은 청화백자, 정호다완 등 도자기 전종목에 걸쳐 명장이요, 달인으로 김정옥 사기장의 작품이 대영제국박물관, 유엔본부, 일본,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 주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김정옥 사기장은 세계적 도예가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것은 우연이 아니요 심기(心器)가 바로 되어야 명기(名器)가 태어나고 작가의 인품이 명품이 되어야 비로소 작품이 명기가 되는 것이다. 백산 선생의 지도를 받은 큰 조카 김영식 작가, 조카 김선식 작가가 김정옥 선생의 지도를 받아 차세대 명장감으로 쉬임 없이 작품을 빚고 있다. 조카 김선식 작가가 문경읍 금우재단회관에서 양로원 인휴마을 돕기 자선도예전을 5일부터 20일까지 열고 있는데 전시작품 준비를 위해 좋이 1년은 걸렸음직하다. 삼촌인 백산 선생에게 지도를 받은 김선식 작가의 빼어난 작품들이 한국도예의 밝은 내일을 보여준다. 새재산록의 가을단풍보다 도자기 잔치가 늦가을을 더욱 밝게 조명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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