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끝으로 은퇴의사를 밝힌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지난 20여 년간 영화와 인연을 맺고 세계 각지를 돌며 기록한 영화제와 영화계 안팎의 이야기 `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문학동네 간)를 펴냈다.

이 책은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영화제를 만들고 이끌어가는지, 지구상의 영화들이 어떤 유통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는지 같은 여러 문제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영화제가 단순히 영상을 쏘아 스크린에 보여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 행사가 아님을 일깨워준다. 그곳에선 사람이 모이고 만남이 생겨난다. 영화를 생산한 사람들과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이들 사이에 나름의 성격을 지닌 교류가 이루어진다. 영화제란 영화를 매개로 펼쳐지는 지극히 현대적인 축제이다. 20세기에 눈부신 발전을 이룬 영상매체의 대표 주자이자, 산업과 예술의 반인반수 같은 기이한 존재인 영화가 있고, 영화를 둘러싸고 갖가지 욕망을 채우려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그곳이 바로 영화제인 것이다. 산업이자 예술이라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 영화, 모두가 이 영화에 열광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영화의 본질적 측면 중 하나인 거대한 상업적 기제를 예민하게 인식하는 이는 거의 없다. 영화제는 영화란 매체의 예술적 가치를 인증하는 동시에 산업적 가능성을 타진하는 자리다.

이 책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시스템의 이면을 자연스럽게 확인시켜주면서, 영화 그 자체를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까지도 구체적으로 그려준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영화제들이 어떤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자신만의 풍경을 자아내는지, 저자는 수십 년간 영화제를 탐방한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관련 상식들과 영화제의 이모저모를 상세히 풀어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30여 개의 주요 영화제에 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수록된 영화제만으로도 세계 영화제 전체의 흐름을 알기에 부족함이 없다. 김동호 위원장의 연륜과 경력이 아니라면 이 정도로 충실한 내용을 지닌 포괄적인 영화제 소개책자를 다시 만나기도 쉽진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일상에 관해 49년간 빼곡하게 메모를 해왔다는 그의 기록벽(癖)이 아니었다면 한국영화가 어느 영화제에 진출해 어느 부문에서 어떤 결과를 냈는지를 그렇게 소상히 풀어낼 수 있었을까. 훗날 이 책은 세계 영화제의 이모저모를 소개한 국내 저자의 첫 번째 책이자 한국영화의 세계 영화제 진출 성과를 기록한 유용한 사료로 기억될 것이다.

이런 가치 외에도 각 영화제마다 관련 도판들을 실어 영화제 직접 발을 딛고 참석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으며, 흥겨운 축제의 마당인 영화제 특유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해당 영화제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을 빠짐없이 덧붙였다. 또한 영화제 소개에 그치지 않고, 영화 상식이나 영화사 관련 에피소드, 영화감독 등에 관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짬짬이 따로 지면을 구성했다. `퍼블릭 시스템 시네마` `극장 앞에서 줄서기` `배지(badge) 등 영화제와 직접적으로 연련된 정보만이 아니라 `알프레드 히치콕` `잉마르 베리만` `오가와 신스케` `요리스 이벤스` 같은 영화감독들의 필모그래프, `뤼미에르 영화의 체코 상영` `브라질의 시네마 노보` 등 영화와 영화사의 요긴한 정보들도 함께 수록해 독자들의 편의를 도왔다. 끝으로 책의 말미에는 `김동호 위원장이 소개한 세계 영화제` 전부에 관한 압축적인 개요를 수록해 세계 영화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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