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머리칼 선명하다
흰 구름이 산허리를 살며시
감싸안는 게 퍽 조심스러워 보인다
알몸의 나무들도 아주 미세하게
가냘픈 숨결로 온몸을 떤다
겨울 산은 떨림으로 가득하다
떨림이 있어 우주가 존재한다
`영혼의 눈`(2002)
겨울의 산의 활엽들이 떨어져버리고 맨몸의 나무들이 서 있어서 뭔가 비어 있는 헐벗은 것 같지만 실상은 비어있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산의 몸에 귀를 대보고 산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많은 생명체들이 잔잔히 떨고 있거나 일렁거리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시인이 말하는 겨울 산의 떨림. 그 떨림은 봄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엄숙하고 소중한 생명의 실존이기에 눈바람 속에서도 아름답기 짝이 없는 것이리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