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이 장편소설 `로우보이 문학동네 刊, 이은선 옮김, 368페이지, 1만2천원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미국 평단의 뜨거운 찬사와 주목을 받아온 존 레이가 최신작 `로우보이`(문학동네 간)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정신분열증을 앓는 열여섯 남자아이의 목소리를 빌려, 냉소와 무관심의 방공호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존속하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서정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로우보이`는 출간 후 미국 비평가와 독자 들에게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비견된다는 호평을 받으며 아마존 `이 달의 좋은 책`에 선정됐다. `잠의 오른손`과 `가나안의 혀`등 단 두 작품만으로도 2007년 문학 전문지 `그랜타`가 10년에 한 번씩 선정하는`미국 최고의 젊은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존 레이는 세심한 플롯, 다양한 장르의 차용, 시간의 비틀림, 시적 비유로 독자의 눈과 마음을 붙드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데뷔 후 10년 동안 장편소설 3편을 발표한 그는 작품을 쓸 때마다 배경이 되는 곳에 살다시피 하며 철저하게 답사하고 몰입하기로 유명하다.`가나안의 혀`를 쓸 때는 직접 뗏목을 만들어서 미시시피 강을 따라 여행하며 주민들을 인터뷰했고,`로우보이`는 지하철을 타고 하루 종일 뉴욕을 돌며 노트북으로 집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들은 공간마다 특유한 분위기를 리얼하게 전달하는데, 그 리얼함이 작품 전체의 몽환적 성격과 충돌하면서 기묘한 인상을 남긴다.

`로우보이`는 막 정신병원의 감시를 벗어난 열여섯 소년 윌리엄 헬러가 다급히 뉴욕 시의 지하철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로우보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퇴원을 앞두고 일주일 전부터 먹으면 “유리에 눌리는 것 같은” 약을 남몰래 끊었다. 자신의 동정을 버리면 점점 뜨거워지는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걸 병원에 있는 동안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제 그에겐 소명이 있다. 그가 계산한 기온 상승 속도에 따르면 세상이 끝나기까지 고작 열 시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그 시간 그의 엄마 바이올렛은 뉴욕 시 특수 실종계 수사과의 알리 라티프 형사와 마주하고 있다. 바이올렛은 정신분열증이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갈까봐 걱정하고, 라티프는 윌이 뉴욕 시민들을 위험에 빠트릴까봐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럼에도 라티프는 바이올렛의 미모와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에 여느 때와 달리 수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든다. 윌의 실종을 해결하기 위해 뉴욕 시를 헤매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엔 특별한 친밀감이 점점 자라난다.

소명을 완수하기 위한 윌의 여정과 바이올렛이 동행한 라티프의 수사과정 중에는 화려한 맨해튼의 이면을 보여주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지하 노숙자들, 십대 여자아이와 성관계를 갖는 걸 거리낌 없이 떠드는 남자들, 환자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정신병원 의사와 간호사, 성매매여성, 그리고 무관심과 경계의 가면을 쓴 승객들…. 그들의 발밑에는 어리석고 요란한 인간 세상을 비웃듯 `침묵의 강`이 흐른다.

“11월12일, 세상이 화재로 멸망했다”라는 짧은 한 줄로 끝나는 소설은 윌에 한해서만큼은 끝까지 논리와 이성에 대해 거부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듯 보인다. 세상을 구해야 하는 윌의 소명과 그 방법,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물음표로 남김으로써 독자들에게 논란과 해석의 여지를 안긴다. 저마다의 논리와 의미를 구성할 수 있는 퍼즐 조각들이 윌의 암호 쪽지처럼 소설 곳곳에 숨어 있음은 물론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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