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년 4월의 어느날 새벽 4시. 잠에서 깨어난 플로라 트리스탕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늘부터 반드시 세상을 바꾸고 말리라`고 결심한다. 페루 식민지의 장교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가족, 결혼, 사회 등 몇 겹으로 세상에서 저주받은 자였다. 하지만 이 땅의 버주받은 자는 그녀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여성들이 아무 권리도 없이 `종`처럼 살고 있는 남프랑스로 향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리하여 저 유명한 19세기의 여성 `체게바라`가 탄생한다. 하지만 몸은 병들고 그녀의 나이 벌써 41살. 하지만 지상에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그녀의 불굴의 의지는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약 50년 후 그녀의 외손자 폴 고갱, 남프랑스에서 반고흐와의 동거 및 엽기적인 사건 이후 가족와 아이 등 세상을 모두 버리고 `나의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타히티로 떠나다. 도덕은 위선이고 예술은 생명을 짓누르는 것일 뿐이었다. 예술이 세상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예술을 매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세상에서 노예처럼 살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는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니라 천국의 삶 속에서 예술을 되찾기 위한 유토리아에의 열정이었다. 하지만 그도 늙었고, 마음은 이미 병들었다.”

-`천국은 다른 곳에` 전문

“비록 천국은 항상 우리가 찾던 것과는 다른 곳에 있지만 천국을 찾으려 할 때만이 우리는 `인간`일 수 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루의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74·사진)는 폭넓은 정치적, 역사적 주제의식과 그것을 드러내는 유머러스한 방식, 다양한 문학적 시도로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온 라틴아메리카 문단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1985년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1994년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스페인어권 문단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대가로, 젊은 작가 못지않은 창작열과 활동으로 유명하다.

특히 격동의 남미 현실을 집중적으로 다뤄왔다. 30권 이상의 소설·희곡·에세이 등 다양한 작품을 내놓았고,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중남미학을 가르치고 있다.

요사의 문학세계는 대중적인 호기심을 자아내면서도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번역가 정창씨는 “(요사의 작품은) `세상 종말 전쟁`처럼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계열의 작품과 `궁둥이`로 대표되는 에로티시즘 계열의 작품으로 크게 나뉜다”고 말했다. 모두 흡인력이 높은 소재들이다.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된 요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천국은 다른 곳에`(새물결 간)는 그가 2003년 발표한 작품으로 그의 소설이 두 축을 따라 큰 궤적을 그려온 정치 소설과 인간의 관능성에 대한 탐구, 이 두축이 하나로 융합돼 본격적으로 함께 다루어져 완숙기의 결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고갱을 중심으로 한 `예술가 소설`과 고갱의 외할머니인 플로라 트리스탕의 `혁명가 열전`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이 소설은 여러모로 바르가스 요사 소설의 진화와 관련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징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진정한 새로움은 이처럼 형식적인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그동안 이 소설가의 정치적 성향을 둘러싸고 벌어진 `진보 대 보수` 또는 `전형` 논쟁과 관련해서도 새로운 점을 보여주고 있다.특히 그것은 작가가 평생 추구해온 정치적 해방과 에르티시즘에 대한 탐구에 있어 기존의 보수-진보 식의 이분법을 넘어서고 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이 문명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타히티로 떠나는 예술적 삶을 소재로 한다. 작가는 미술사의 가장 유명한 스캔들 중 하나인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친구이자 예술적 동지였던 고갱의 불화와 고흐의 자해, 고갱의 타히티행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실존인물인 고갱의 외할머니인 플로라 트리스탕은 그 외향성에서 고갱의 대척점에 서 있다. 노동자와 여성의 해방을 위해 남프랑스로 떠나는 그녀의 모습은 고갱의 타히티행과 교차된다.

소설은 플로라 트리스탕과 그 후 약 50년 후 폴 고갱의 삶을 번갈아 그린다. 두 인물을 통해 인간의 관능과 에로티시즘, 대통령 후보로까지 출마했을 정도의 정치적 성향 등 작가의 두 가지 문학적 색채가 한 권에 나타난다는 점이 독특하다.

고흐의 귀 절단 사건 이후 타히티로 떠난 고갱은 가난과 고독, 향수 속에 2년 만에 파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고갱은 “진정으로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면 우리가 겉에 걸친 문명이라는 허울을 벗어 던져버리고 우리 안에 있는 야성을 끄집어내야 한다”던 자신의 말을 타히티에서 확인한다.

여성 `체 게바라`로 불린 플로라 트리스탕은 부자와 당국의 착취에 맞서 노동조합을 이끌며 가난한 사람들과 여성들에게 정의와 자유를 안겨주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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