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 / 시인
스님을 보면 궁금한 것이 있다. “왜 스님께서 입산하여 스님이 되셨는가”가 아니라 `스님`이란 호칭의 유래가 도대체 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문경시 산양면 위만리란 외진 마을에 있는 모 사찰의 주지스님을 보니 풍골이 언뜻보기에도 선풍도골(仙風道骨)이라 스님의 유래를 물어보았더니`스님`은 `승(僧)님`이 변하여 된 말이라고 명쾌하게 속인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스님에게 `스님`의 뜻을 알아보았지만 “글쎄요”가 대부분의 답변이었다.

하기야 자신이 없는 일에는 모른다고 하는 것이 최적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몇해 전 일이라고 단순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벌써 십년 가까이 됐을게다. 내가 일요일마다 즐겨보는 KBS1TV의 `전국노래자랑`의 이색적인 한 장면이 확실하게 떠오른다.

그 날은 경남 울주군편이 방영됐다.

첫 머리에 등장한 것은 아닌데 건장한 60대 초반의 스님이 출연하여 `우중(雨中)의 여인`을 감칠맛 있게 잘 불러 주었다. `전국노래자랑`이 시작되고 처음 이 프로에 올려지고 불려진 노래로 기억이 된다. 이 노래를 부른 스님은 울주군 관음사 허공 주지 스님이었다. 얼굴에 자신감이 넘치고 믿음직하며 키도 훤칠하고 산사(山寺)에 섞기는 외양이 너무 아까울 정도였다. `우중의 여인`은 박춘석 작사, 박시춘 작곡, 오기택 가수가 노래한, 부르기는 까다롭지만 분위기 있는 노래였다. 생각나는 가사를 일단 옮겨보면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헤치고/나의 창문을 두드리며 흐느끼는 여인아/만나지 말자고 맹세한 말 잊었는가/그렇게 울지 말고 돌아가거라/ 그렇게 울지말고 돌아가거라/ 깨무는 입술을 보이지를 말거라”

미친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지만 사랑에 미치면 고칠 의사도 없는 세상이다.`우중의 여인`이 나온, 40년 전에 이 땅에 야간 통행금지가 있었는데 젊은 여자의 몸으로 얼마나 지독한 사랑의 열병에 걸렸으면, 우산도 없이 장대빗속을 달려와 꽉꽉 닫힌 문을 열어 달라고 장작 패듯 창문을 쾅쾅 두드려 댔겠는가?

여자가 뜨거울수록 남자는 차갑기만 하다. 얼른 문을 열어주고 뜨겁게 포옹을 해주는 게 아니라 일언지하에 막무가내로 그대로 돌아가라고 손사래를 저으며 호통만 치는게 아닌가. 고대중국의 미생(尾生)은 캄캄한 한밤중 약속한 다리 밑에서 약속한 애인을 기다렸지만 폭우 때문에 여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고 미생은 다리밑에서 혼자 기다리다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익사하고 말아 융통성 없이 기다리다 죽은 미생은 역사속에서 돌팔매를 맞고 있다. 그의 신의는 무가치하게 되고 사랑의 맹신만 계속 돌팔매를 맞고 있다. 애인의 집을 한밤중 그것도 폭우가 쏟아지고 우뢰와 번개가 치는 무서운 밤도 가리지 않고 용감하게 돌격하는 정열적인 여인…. 사랑은 일방통행이어선 안되고 서로가 마음을 열어야 한다. 한밤중 밀폐된 공간에서 만나는 불륜한 사랑이어선 안되고 밝은 대낮에 환하게 열린 공간에서도 떳떳이 만날 수 있는 그런 건강한 사랑이 되어야 한다.

내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니 `우중의 여인`의 창문을 격렬하게 두드리는 여인은 꼭 사랑의 열병을 앓는 젊은 여인이 아니라 거세게 창문을 치며 쏟아붓는 폭우, 거센비를 사랑에 미친 여인으로 의인화 했다고 생각해 본다. 그날 울주군 노래자랑에서 허공 스님은 격정적인 노래를 신도와 상담하듯이 차분하게 잘 불러 인기상을 받았다. 노래도 시원하게 잘 부르고 속기를 졸업한 허공 스님은 공해에 찌든 세상에 맑게 개인 자유의 푸른 하늘같은 참신한 모습을 보여 주어 속인의 가슴에 새바람을 불어넣어 주었다. 목탁을 두드리며 법문을 외는 것도 설법을 하는 것도 포교겠지만 셀 수 없이 많은 대중 앞에서 감명깊은 노래를 불러 기쁨을 주는 것도 또 하나의 `큰 법열`이 아닐까. 허공스님은 전국노래자랑 인기상 수상하기 전부터 전국 산사음악회에 자주 출연해 좋은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보배로운 큰 스님임을 저절로 알게 됐다. 그 뒤 전국노래자랑에 `우중의 여인`으로 도전한 상주의 농민 후계자가 한 분 있었지만 `우중의 여인`처럼 애인의 창문을 열지 못했다. 허공스님이 `도승`으로 뿐 아니라 `가승(歌僧)`으로도 대성하시기를 합장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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