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 / 시인
서울 동부터미날 인도에는 다리가 없다기 보다 하반신이 달아난 반토막 인생이 겨울엔 추위에 떨며, 여름엔 더위에 시달리며, 동전바구니 앞에 엎드려 목메게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혜)`를 부르고 있다. 잘 움직일 수 없는 불구의 몸임에도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종일 성가를 열창한다. 몸을 제대로 자기가 움직일 수 없음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그들의 하루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 불편한 몸임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이어가는 비결은 무엇일까?

끼니때가 되면 공급되는 짬뽕맛이 그들을 지탱해주는 것일까?

애절한 노래를 부르며 푼전을 구걸하고 있는 그들. 애절하게 부르는 노래는 녹음된 것이고 실제로는 입술시늉만 하는지도 모른다. 최루탄용 성가가 행인의 마음보다 앵벌이의 마음을 더 울려주는지도 모른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음악은 호소력이 막강하다. 삶에 지쳐 맥이 풀렸다가도 흐르는 노래를 들으면 힘이 불끈 솟는다. 국민평균수명이 세계 선진국 수준이 된 것도 의약의 힘 못지 않게 음악의 감동력이 상승작용을 한 지도 모른다. 일제 강점기에 탄생한 꼬부랑 노인이 된 흘러간 노래가 21세기에도 이 땅에 장기체류하면서 이 땅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왕평 작사의 `황성옛터`는 작사자의 고향에 노래비가 오래전에 세워졌다. 세워진 노래비는 비 바람 앞에 작아지고 있지만 노래의 감동은 국민의 가슴속에서 계속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황성(荒城)`이란, 일본에게 망한 우리나라(조선)을 가리키는 것은, 상식이하의 상식으로 국민제현이 익히 아는바다. `황성옛터`는 한국 근대화의 모세, 박정희 대통령의 불변의 애창곡이기도 했다. 해방후 태어난 국민들보다 일제강점기를 겪어본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황성옛터`노랫말 끝머리에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라고 마무리를 하는데 “헤매어 있노라”라는 어불성설이다. 문법적으로 구태여 따지면 `헤매고 있노라`라고 해야 한다. 아니면 전에 부르던데로 “헤매어 왔노라”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고 정확하다고 본다. “헤매어 있노라”라고 노래를 마무리하면 감흥이 팍 줄어들고 허전한 느낌이 든다. 말이 이렇게 미묘한 것이 말의 속성이다.

여럿이 둘러앉아 젓가락 장단을 맞추며 부르기엔 `물방아도는 내력`보다 더 좋은 노래가 없다. 벼슬도 싫고 서울도 싫은 사람은 이 땅에 한 사람도 없을 텐데 이 노래에는 국민의 대다수가 시골살이에 자족하고 있는 걸로 되어 있다. 가사 중 “낮이면 밭에 나가 길쌈을 매며….”로 되어 있는데 필자가 평생을 농촌형 소도시에 살고 있지만 논밭에서 길쌈을 매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길쌈은 `베짜기`로, 집안에 있는 베틀위에서 베를 짠다. “낮이면 밭에 나가, 기음(지심)을 매며…”가 백 번 맞다. 우리나라 가수선생님중 설운도씨 한 분만 `길쌈`대신 `지심`을 맨다고 정확하게 부르고 있다.

`지심`은 `기음(밭매기)`의 사투리로 오히려 표준말 보다 시골맛이 풍기는 좋은가사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27일 `KBS 가요무대`에는 오랜만에 `한강`이란 가슴 뭉클한 애창곡이 나왔는데 가수 오은정씨가 구성지게 잘 불러 1950년 6월28일 한강인도교 폭파로 귀신도 모르게 애은 서울시민 몇 천명이 죽은 비명횡사를 애도하는 가슴아픈 노래가 `한강`이란 노랜데 가수 백년설의 부인인 심연옥 여사가 불러 국민들의 한을 달래주었다. 말이 나온 김에 박재란의 `임(창살없는 감옥)`도 1962년부터 외로운 병영사회에서 외로운 젊은 가슴에 크나큰 위로를 주었다. 실연 당한 젊은이가 부르기에 이보다 더 좋은 노래는 이 땅에 다시 없는듯 하다. 나는 TV나 라디오를 듣다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화끈하게 평소보다 볼륨을 높여 집중감 상하는 미덕을 발휘한다. 평소에 좋은 노래를 열창하여 가요 애호가와 국민들에게 용기백배케 하고 삶의 즐거움을 배가하는 가수의 예명의 유래를 탐구해 본다.

올 여름에 작고한 원로가수 신세영은 1950년대에 데뷔한 가수로 `전선야곡`을 구성지게 불러 `6·25`나 `국군의 날`기념방송에는 없어서 안될 중요한 가수였다. 신세영 가수가 나올 무렵 한국가요계 판도의 3총사인 신 카나리아, 장세영, 이난영 세 가수 분의 이름 한 자 씩을 양자하여 `신세영`이란 새 가수 이름이 태어나게 됐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의 태진아씨의 예명은 태진아(본명 조방헌)를 가수로 발탁한 서승일 작곡가가 지었다.

`태현실+ 남진+ 나훈아` 세 대 예술인의 이름 한 자씩을 따서 태진아가 태어났는데 서승일 작곡가의 희망사항이 적중하여 태진아씨는 못말릴 대형가수가 되었다. 가수 태진아씨의 형제우애는 대한민국에서 단연 1등이다. 가요를 사랑하고 애창하는 이들에게 신의 축복이 정년 있을찐저. 노래의 날개를 타고 국운도 훨훨 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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