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전략경영시스템 구축은 공단업무 혁신 가져올 것”

경북 군위출신의 김진만(68)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1942년 7월 군위군 군위면에서 태어났다.김 이사장은 군위초등학교를 거쳐 군위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 대구로 이사하면서 경북대 사대부중으로 전학했고, 경북대 사대부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66년 한국상업은행에 입사하면서 뱅크맨으로 첫 발을 내디딘 김 이사장은 외국부 부장대리까지 올랐고, 한국종합금융 영업2부장·국제금융부장·이사를 거쳐 한미은행 자금부장·상무·전무, 그리고 1998년에 마침내 한미은행장이 됐다. 1998년에는 한빛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 이사장은 2001년 3월 한빛은행장에서 물러난 이후 7년여동안 대성그룹 상임고문 등을 하며 지내다 지난 2008년 9월에 공무원연금공단이사장으로 취임해 지난 4일자로 취임 2주년을 맞았다. 김 이사장을 만나 어린 시절 얘기와 함께 뱅크맨 시절, 그리고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으로서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들어봤다.

<편집자주>

“경제 사정으로 택한 은행 후회없는 선택” 한미·한빛은행장 등 맡아오며 성공 경영

“경영효율화·준비금 강화·서비스 선진화 … 3대 과제 정해 임기동안 공단 경영 매진”

-어린시절의 꿈은 무엇입니까.

◆어릴 때는 변호사가 돼 사회정의 실현과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대학에 다닐 때도 노동 관계법을 열심히 공부했으며, 사회정책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방면의 서적도 많이 읽었다. 그러나 이런 목표는 사법시험 실패로 방향을 전환하게 됐다.

-대구에서 명문고인 사대부고에 다닐 때 친하게 지낸 친구들을 소개한다면.

◆반세기 넘게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 이제 모두 현역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전 고려대학교 정문길 교수, 건축가 김무현, 의사 김원재, 강홍 전 한국제지 부사장, 대구 맥향화랑 사장 김태수,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고재천 회장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을 함께 다닌 친구로는 대법관을 지낸 이용우, 전 외환은행장 김경림, 전 서울고검장 김상수 등과도 아직까지 자주 어울리는 사이다.

-대학졸업후 뱅크맨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 계기가 있다면.

◆대학진학때부터 부친은 고시에 매달리지 말고 서울대 상대에 진학하라고 했는데 내가 법대를 고집했다. 부친은 고향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가 가산을 탕진하는 아픔도 겪어서 내가 정치를 하게될까봐 그렇게 말렸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나는 정치를 하지 않고, 변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사법시험 실패에 실망해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기로 했고, 당시 집안의 어려운 경제적 사정 때문에 안정적인 생활을 기대하고 은행을 선택했다. 당시 선친과 매우 가까운 어른께서 은행에 들어가 성공하면 공무원의 길 못지않다고 강력하게 권하셨다. 결과적으로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은행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특히 선친이 좋아하셨다. 내가 은행에 가겠다고 했더니, "거 봐라. 내가 서울대 상대에 가라고 하지 않더냐?"고 하셨다. 내가 주총에서 이사가 됐다고 됐다는 소식을 선친께 전해드리니까, "잘했다."고 칭찬하셨는 데, 그게 내 평생 부친으로부터 들은 최초의 칭찬이었다. 선친은 내가 한미은행 이사가 된 다음해에 돌아가셨다. 그 뒤 은행장이 되고 나서 고향마을에 내려갔더니 동네 어른들이 "부친이 하늘에서도 좋아하시겠다."면서 마을거리 곳곳에 현수막까지 걸어 축하해줬다. 그런게 내가 뱅크맨이 되고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던 듯 싶다.

-뱅크맨 생활을 하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 있다면.

◆한미은행장 시절 IMF 외환위기를 맞아 자본 확충에 성공해 한미은행을 건전한 은행으로 지켜냈으며, 결국 우량은행으로 평가돼 경기은행을 흡수 합병했던 일이다. 그리고 초대 한빛은행장으로 국내 금융 사상 최대의 은행합병을 성공적으로 경영해 안정시켰으며, 오늘날 우리은행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자부한다.

-한미은행장에 이어 한빛은행장을 맡았는 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내가 한미은행장을 맡고 나서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잘넘겼다고 평가한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새로 은행합병을 준비하고 있는 한빛은행으로 스카우트 됐다.

-은행을 떠나고 수년간 공백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왔는 데, 그 때 소감을 말한다면.

◆공직은 평생 처음이다. 그동안 금융계에서 체득한 금융과 경영의 노하우를 준정부기관인 우리 공무원연금공단 경영에 도입해 임명권자의 뜻을 받들어 공공기관 선진화에 공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7년여 은행을 떠나 있는 동안에 어떻게 지냈습니까.

◆은행장을 마친 후 쉬면서 2년정도 안국동에 있는 서당인 `미당선숙`에서 사서삼경중 하나인 맹자 공부를 열심히 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통상 대학교수가 퇴직후 맹자공부하면 2년정도 걸려야 책을 떼는 데, 1년6개월만에 뗐으니 머리가 비상하다.”고 칭찬도 들었다. 그 뒤에는 기업체 고문으로 맡아 일도 하고, 친구들과 등산도 다니며 소일했다.

-7년여 현업에서 떠났다가 다시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으로 발탁된 배경이 있다면.

◆공무원연금공단의 금융자산 운용이 5조원 정도 되고, 연금공단의 수익의 40%가 자산운용수익이다. 이전에는 비금융인들이 이사장을 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연금공단 이사장은 금융시장을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행정관료가 하기보다는 기금운용과 사업분야가 있다는 이유로 이 대통령이 "금융을 아는 사람이 (이사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들었다. 그런 배경에서 내가 이사장으로 뽑히게 된 것 같다.

-공무원연금공단이 하는 일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공무원연금공단은 연금제도의 안정적 운영과 기금의 효율적 운용을 통해 공무원 및 그 가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안정된 노후를 보장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기관이다. 주요 업무는 100만 공무원과 30만 퇴직공무원들의 연금관리, 재해보상 업무이며, 약 5조원 정도의 금융자산으로 기금증식사업을 운용하고 있다. 이밖에 골프장과 호텔 등 시설도 운영하고 있고, 주택분양 및 임대 등 주택사업도 겸하고 있다. 정부 위탁사업으로 학자금대출, 맞춤형 복지사업 등도 하고 있다.

-공무원연금공단을 운영하면서 경영방침이 있다면.

◆원칙에 입각한 업무처리, 직원들의 청렴성과 사명감 등은 공무원연금공단의 강점이지만, 의사결정 과정의 비효율성, 고객서비스에 대한 공단 편의 위주 사고방식, 사업운영의 상업성 취약 등은 약점이라 본다. 그래서 장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강하기 위한 방안으로 △경영의 효율화, △기금의 책임준비금 기능 강화, △연금서비스 선진화라는 3대 과제를 정해 추진하고 있다. 임기동안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고,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바로잡을 수 있도록 문제제기는 꼭 해두겠다는 원칙 하에 완급을 조절하면서 추진하고 있다.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은.

◆가장 먼저 고객욕구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해 11월 `공무원연금컨택센터`를 대전에 설치했고, 올해 1월에는 고객기획본부를 신설해 고객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또 연금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업무처리절차재구축)을 추진해 각 기관의 연금업무 부담을 경감하는 반면 서비스 수준은 높였는데, 첨부서류 간소화를 통해 급여처리 기간도 12일에서 3일 이내로 단축했다. 이밖에 기관에서 연금담당 공무원이 처리하던 퇴직금과 대여학자금의 신청을 인터넷 신청제로 개선하는 등 고객서비스 선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통합전략경영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고객만족도의 획기적 향상과 더불어 일하는 방식이 21세기형의 선진경영 시스템으로 레벨업(Level-up)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기금의 책임준비금 기능 강화를 위해 2014년까지 연금기금 10조원 조성이란 중기 경영목표를 세우고 실천계획을 펼쳐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면, 노후화된 서울의 개포·고덕 공무원 임대아파트 단지를 재건축해 2조5천억 원의 분양수익을 추가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행정안전부장관의 사업승인을 받은 상태다.

-역점사업 가운데서도 이사장으로서 가장 애착을 갖고 추진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특히 통합전략경영시스템 구축은 공단 업무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한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연금 수령절차나 퇴직 하면서 퇴직금 수령신청을 하면 받을 때까지 12일 걸리던 것이 3일 이내에 정리된다.

-이사장으로서 가장 어려웠거나 아쉽게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솔직히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하다고 반성하고 있다. 민간기업 경영풍토에 익숙한 CEO가 공공기관 노조, 특히 그동안 강도 높은 구조조정 때문에 피해의식이 강한 노조와 원만한 관계를 구축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 공단 발전을 위하고 또한 직원들을 사랑하는 `원칙 경영`을 하다보면 머지않아 잘 풀려 갈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도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편하다고 해서 원칙을 바꿀 생각은 없다.

-이사장으로서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임기가 이제 1년 밖에 남지 않았지만 우리 공단이 좀더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조직이 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대구·경북지역민들에게 당부 또는 인사말을 한다면.

◆대구·경북지역은 제가 나고 성장한 터전입니다. 지역주의를 앞세우는 것은 곤란하지만, 고향에 대해서는 언제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고향이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발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필요하다면 저의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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