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쓸쓸한 공원에 누워 꿈을 꾼다. 수많은 집들이 늘어선 거리를 갑옷 입은 기마병들이 지나가는 꿈, 휘파람을 불며 지나가는 긴 행렬을 지붕 위의 티티새들이 수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꿈.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의 무덤 옆을 지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끝없이 걸어가는 꿈. 술 취한 도굴꾼이 칼과 항아리가 묻힌 내 무덤을 파헤치는 꿈. 누군가 무덤 밖으로 뛰어나가 거리를 질주하는 꿈. 내 꿈밖으로 빠져나간 사람들이 붉은 지붕들 위를 고양이처럼 뛰어다니는 꿈. 불켜진 집들의 유리창에는 끝나지 않는 나의 꿈을 지켜보는 눈동자들이 가득하다

`미로 여행`(2002)

시인의 악몽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거의가 모종의 불안감과 불안정된 느낌을 준다. 뿐만아니라 어떤 은폐된 폭력성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장면 장면들에는 불구의 모습들이 내재되어있고 인정하기 싫지만 낯설지 않은 폭력의 양상들이다. 그의 악몽이 더욱 심상치 않는 것은 마지막 행에서 암시되듯이 `불 켜진 집들의 유리창`을 통해 `나의 꿈을 지켜보는 눈동자들`의 음험하고도 교활한 시선들이다. 이렇게 통제되고 있는 세계에서는 어떤 조화로운 평화와 행복의 추구 마저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시인>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