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시인
엘레강스, 판타스틱, 센세이션, 뷰티풀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생각나는 사람, 흰옷과 검은칠을 한 머리의 패션으로 독특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사람, 개그맨들의 성대모사에 등장해서 웃음거리가 되었던 사람, 그러나 조금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자신의 트렌드를 높여준 것에 감사하다고 하던 사람,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알려지게 된 이름 김봉남, 그러나 당당하게 끝까지 청문회장에서 자신과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예를 갖추던 사람, 끝까지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독신으로 깨끗하게 살고자 했던 사람, 자신의 패션쇼에 인기연예인들을 초청했고 심한노출을 즐겨하거나 누드촬영을 한 연예인들은 철저히 배재하고 자신의 패션에도 순수함을 강조하지 절대 섹시함은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하던 사람, 자신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아티스트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바로 캐릭터였던 사람, 1966년 파리와 1968년 미국 뉴욕에서 패션쇼를 성공하며 국제무대에 우아함을 지닌 한국적인 스타일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사람! 새벽4시에 일어나 19개의 신문을 읽고 5개의 텔레비전을 동시에 보고 모든 장르의 음악과 공연을 거의 빠짐없이 보러 다닌 교양과 깊은 식견을 갖춘 사람, 모든 시상식이나 행사에 빠짐없이 앞자리에 앉아 소개되면 연예인이 아니면서도 10대 소녀들까지 소리 지르며 환호하게 만들었던 가장 연예인 같았던 사람, “내 상상력의 원천은 다빈치, 미켈란젤로, 샤갈, 고갱처럼 천재적인 화가의 그림이다”,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 사람들 마음을 굉장히 아름답고 순수하고 순결하게 변하도록 하고 싶어요”, “난 항상 시를 쓰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무대 위에 거대한 서사시를 만들어 올리는 이유다.”라고 의미 있는 어록을 남긴 사람, 상업화의 물결에 합류하면서도 상업화의 추악한 이면에는 동조하지 않은 땅을 딛고 살면서 티끌을 묻히지 않은 도인이었던 사람, 이렇게 많은 수식어가 붙어도 아직도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지는 사람 앙드레 김, 그는 75세(나이가 그만큼이었는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몰랐다) 8월 12일 오후 7시25분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마당에 상당히 많은 글들이 인터넷과 지면을 가득 채웠다. 위의 수식어들도 다 그런 글들을 축약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종합해서 그의 삶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다른 것은 몰라도 그가 높은 곳에 오르려고만 하지 않고 항상 낮은 자리에 처할 줄 아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가 90년대 후반까지 강남에 자기 소유의 의상실 하나 가지지 못할 정도로 남에게 나눠 주는 삶을 산 것을 대부분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이상이 `세계인`, `샤넬을 능가하는 다양한 영역의 한국적 디자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 역시 드물 것이다. 오천원이 넘는 식사는 하지 않았고 떡볶이를 좋아하고 서민음식들을 즐겨한 70넘은 사업가는 “국위선양을 위해 해외 패션쇼에 쏟아 부은 에너지나 비용을 아껴서 국내에서 의상실을 여러 개 내고 고객수를 늘리는데 몰두 했다면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다”고 하는 평에 웃음만 엷게 지었을 뿐이다.

어느날 부터인가 개그맨들이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우스운 인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간간이 영어를 섞어 가면서 느릿느릿 던지는 말투는 희화화되고 조롱과 조소의 대상으로 변질되어 사람들 사이에 유행했다. 그렇지만 그는 내공이 깊은 사람이었다. 청문회를 통해 참고인이었던 그는 그때까지 쌓아온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감내해야 했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자 모두 하하호호 이런 이름을 가졌다니 하며 웃었다. 그렇지만 그는 정말 내공이 깊은 사람이었다. 아래로 내려가도 전혀 흔들림 없이 그는 강한 내면을 갖추고 나타났다. 대중들 앞에서 “처음에는 속상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내게 도움이 됐다” 고 말하자 오히려 동정표가 그에게 몰렸다. 또 사람들에겐 이런 생각도 있었지 싶다. “대통령도 `영웅`이라 칭송했다지만 김봉남 그 이름을 보니 그도 결국 `천한 것`이었어” 남의 아픔이 내게 기쁨이 되는 이런 야릇하고 야비한 쾌감이라니, 그런 걸 온 국민에게 선사하고 떠나간 분에게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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