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춘수는 어떤 글에서

역사도 버리고 계급도 버렸다고 말했지만

돌아보아도 나는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다

쓰던 몽당연필도 숟가락도

수수 빗자루도 놋쇠 가위도

사물이 아니라 이념이라면

나는 유물론도 공산주의도

그런 것을 가져본 일이 없어 버릴 것이 없다

아, 저기 서쪽으로 저무는 저녁노을도

노을 아래 울고 가는 새의 노래도

`가장 따뜻한 책`(2005)

상실, 상실이라면 가진 것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을 일컫는 말이리라. 그런데 시인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잃어버릴 게 없다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역사도 계급도 물질적 자산 뿐 아니라 그 어떤 경향성을 가진 이념도 심지어는 동당연필도 숟가락도 가져본 일이 없어서 버릴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소유는 그 자체가 위대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소유는 그 위대함에서 퇴역해야함을 알아야한다. 소유는 그 자체가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 그 소유에서 벗어나야하는 법이다. 법정스님도 작가 박경리 선생도 훌훌히 떨치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서쪽 노을 속으로 갈 수 있었는지 모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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