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농사 모두 망쳤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죽어나가는 벌통을 태우는 심정을 아십니까”

16일 오후 포항시 북구 죽장면 두마리 산중턱에서 만난 지성구(46) 포항죽장토봉연구회장은 자신의 토종벌통을 들여다보며 한숨지었다.

지난해 강원도에서 시작돼 전라도를 휩쓸고 있는 토종벌 바이러스 `낭충봉아부패병`이 포항 죽장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번데기로 성장하지 못하고 병으로 죽은 흰색 애벌레가 벌통에 즐비한가 하면, 벌통 1군에 모여있던 2만마리의 벌들이 자취를 감춰버려 노란 밀랍 벌집만 앙상하게 남아 있기도 한 것.

지 회장은 “소독약도 뿌리고 벌통 청소도 매일 하고 영양분도 공급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면서 “40군의 벌통 중 이미 3통을 소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벌통을 소각해야 할 지도 몰라 답답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현상은 두마리 인근 현내리도 마찬가지. 토종벌을 키우고 있는 윤해희(65)씨는 “죽장면 일대 69개 농가 1천600여개의 벌통 60% 가량이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돼 집단폐사 등의 피해를 입고 있어 올해 토종꿀 농사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죽장 일원 토종벌 사육 농민들은 이번 사태가 일단은 전라도 지역에서 종봉을 분양받아 오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돼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농가들은“청정지역 죽장에서 토종벌 바이러스병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정부에서도 뚜렷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고, 피해를 최소화 할 백신개발에도 나서지 않고 있어 모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며 미온적인 당국에 불만을 터뜨렸다.

지성구 죽장토봉연구회장은 낭충봉아부패병의 영향은 수확기인 10월까지 확산될 것으로 보여 죽장의 경우 지난해 4t에 달했던 토종꿀 수확량이 올해는 1t에도 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 회장은 “경북지역에서는 죽장면과 칠곡군 동명면, 예천군 상리면 등지에서 낭충봉아부패병이 확산되면서 피해를 입고 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법정전염병이나 재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피해보상이 어렵다고 해 한봉 농가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고 했다.

/배준수·윤경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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