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타 뮐러(57·사진)가 15일 한국을 찾는다.

루마티아 태생의 독일 망명 여성 작가인 뮐러는 응축된 시정과 산문의 진솔함으로 소외층의 풍경을 묘사해 세계 최고 작가로 평가받았다.

그의 방한에 즈음해 그의 대표작 세 편이 국내에 첫 출간됐다.

국내 굴지의 출판사인 문학동네가 오는 20일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마음짐승`을 번역, 펴낸다.

전후 전체주의 사회의 참상을 그린 작품 `숨그네`와 `저지대`로 국내 독자들에게 높은 관심을 받은 뮐러의 이번 세 작품은 작가가 자전적 경험을 담아 전후 전체주의의 공포를 생생히 묘사한 작품들이다. 개인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실존적이며 일상적인 억압의 풍경을 대단히 시적이고 치밀한 언어로 그려 보인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뮐러의 예리한 현실감각과 풍자적인 사회비판, 전체주의에 대한 거센 저항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장편소설이다.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의 말기를 배경으로 공포와 핍박으로 가득 찬 전체주의 시대의 상처를 시적 언어로 그린다.

뮐러가 공장에 취직해 번역사로 일하던 시절 비밀경찰의 스파이 제의를 거부했다가 온갖 고초를 겪다 해고된 것처럼, 소설 속 여교사 아디나도 비밀경찰에 주의할 인물로 찍혀 위협받는다. 소설은 차우셰스쿠 정권의 붕괴 후에도 독재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참함을 드러낸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라는 제목은 루마니아의 속담에서 가져온 것이다. 차우셰스쿠 정권이 붕괴됐더라도 독재자의 추종 세력과 그 시스템에 익숙해진 탓에 근본적인 정치·사회적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뮐러가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망명하기 1년 전인 1986년 발표한 작품으로, 뮐러 자신의 실존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이주`의 주제를 다룬 작품이자, 이별과 떠나옴에 바치는 비가(悲歌)로 읽을 수 있다.

당시 독재정권의 공포에 시달리며 서구세계로의 이주를 기다리던 독일 소수민들의 내면풍경을 압축적으로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뮐러는 촘촘하고 수수께끼 같은 문장으로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상식, 도덕과 정의 대신 탐욕과 뇌물, 술수와 불법이 판을 치고 갖은 뒷거래가 횡행하는 독재정권의 처참한 모습을 그려낸다.

소설은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이 독일 소수민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여가던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음짐승`

`마음짐승`에는 특히 뮐러 자신의 개인사가 많이 반영돼 있다. 책은 차우셰스쿠 지배하의 루마니아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 주인공이 떠나온 고향의 사진을 보며 기억을 더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뮐러가 “차우셰스쿠 독재치하에서 세상을 떠난 두 친구를 위해 쓴 작품”이라고 밝힌 소설로 독일로 탈출하고 나서도 여전히 고통받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렇듯 `마음짐승`은 독재 시절 루마니아를 돌아보는 뮐러의 청춘일기와도 같은 작품이다. 오래전 잘려진 언어들로 가득 찬 낱말상자를 들고 조국 같은 타국인 루마니아에서 타국 같은 조국인 서독으로 감행했던 젊은이들의 엑소더스, 그 절망의 눈부시고 뼈아픈 기록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헤르타 뮐러 = 1953년 루마니아 내의 독일계 소수민족 거주지에서 태어나 티미쇼아라대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뒤 공장에서 루마니아어·독일어 통역사로 일할 때 정보원으로 활동하라는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요구를 거부한 뒤 정보기관의 감시대상이 됐다. 82년 단편소설집 `저지대`로 문단에 데뷔했다.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작품을 썼으며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감시와 압박이 심해지자 1987년 독일로 망명했다. 독일의 주요문학상을 두루 수상했다. 그의 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강제 징집됐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강제수용소에서 5년간 노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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