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순간마다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불안을 초래하는 이 사건들은 죄책감, 공격적 욕구, 미움, 원한 등의 감정을 낳는다. 겉으론 웃고 있어도 속으론 눈물바다를 헤맨다. 나아가 혼란을 불러일으킨 대상을 향한 안경렌즈는 왼쪽은 악마의 것이고 오른쪽은 천사의 것이 되기도 한다.

정신과 전문의 이무석의 `정신분석에로의 초대`(도서출판 이유, 2003)는 근래 내가 산 책 중에 가장 흥미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기초이론을 저자의 입맛에 맞게 해설하고 있는데, 풍부한 그림과 다양한 실례로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예의 안경렌즈 부분도 책 속 그림 중 하나인데 자아의 방어기제 중 `분리`에 해당한다. 분리는 자기와 남들에 대한 이미지나 태도가 전적으로 좋은 것과 전적으로 나쁜 것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것으로 나눠지는 것을 말한다. 우유와 독약을 섞으면 우유마저 마실 수 없게 되니 분리해서 보관하는 것과 같은 원리란다. 어떤 한 사람을 천사로 보다가 갈등 상황이 생기면 곧 악마로 치환해버리는 경우가 여기 해당된다.

삼십 여 가지의 자아 방어기제가 실려 있는데, 이 방어기제는 본능적 욕구에 대항하는 초자아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아는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려 노력하고 이 모든 과정은 방어기제가 되는 것이다.

`억압`은 가장 흔히 쓰는 방어기제이다. 가질 수 없는 것, 허영심, 순간의 충동 등을 무의식의 가방 속으로 눌러 꾹꾹 눌러 버리는 것이다. 누구나 죄의식, 창피, 자존심의 손상 등에 대한 기억이 있다. 이 경험들은 고통스런 불안의 기초가 되므로 자연스레 억압의 대상이 된다.

억압은 불안을 방어하는 기본적인 방어기제이지만 실패하면 남 탓으로 돌리는 투사가 되고 만다. 성숙이냐 유치하냐의 갈림길이 여기인데 신경증적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는 대부분은 전자의 틀 안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리라. 억압이 강한 환경일수록 편견이나 선입견이 많아진다. 이는 억눌린 생각들이 풀려나올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길을 터주기 위해 정신 분석가들은 억압을 극복하는 과정을 가장 기본적인 분석 단계로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억압에 이어 눈길이 오래 머문 부분이 `취소` 기제였다. 상대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느낄 때, 그에게 준 피해를 취소하고 원상복귀하려는 행동을 정신분석이론에서는 취소(undoing)라고 한다. 크고 작은 인간의 속죄행위가 이 취소에 속한다.

인정받는 한 집안의 맏며느리, 신이 나서 부엌일을 진두지휘한다. 평소에 뺀질거리는 셋째 동서가 설거지라도 하기를 바라는데 그럴 기미가 없다. 참지 못한 큰며느리는 둘째동서의 설거지통에서 설거지거리를 나눠주며 셋째더러 욕탕에 가서 하라고 한다. 설거지양이 많지 않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미안한 맘과 죄책감이 생긴 큰며느리는 커피를 타서 얼른 셋째동서에게 밀면서 다정하게 군다. 정신분석이론에서 보면 `커피를 건네는 행위`가 기본적인 취소의 방어기제가 된다.

책을 읽다보면 일상의 사소한 행위부터 큰 사건까지 인간의 모든 행위들은 방어기제의 소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어릴 때부터 가정적, 사회적, 환경적 이유로 인해 욕구는 좌절되고 금지는 갈등을 일으킨다. 이렇게 되면 마음의 평화가 깨지면서 불안이 생긴다. 두려움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충족을 얻는 방법을 타협한다. 이 방법 과정이 방어기제이다. 이 방어기제는 곧 개인의 성격 특성이 된다.

인간은 마음의 평정을 원한다. 자아는 방어기제를 적절히 활용해 불안을 피하고, 한편으론 본능 욕구를 부분적으로나 충족시킨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마음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정심을 회복한다. 정신분석이론이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인 학문이란 생각이 든다. 프로이트의 위엄이 지당해 보이는 순간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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