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간 인연으로 끌어내
“햇살고운 언덕위 흙집은”
“밝은 사랑을 은밀히 유혹”

“뒤안, 그 쓸쓸한 땅은/ 늘 젖어 있거나 얼어 있어/ 눈물 마르지 못한 땅이거나/ 어머니의 젖은 손바닥 같은 곳// 서늘한 바람이 수런대는 비탈에/ 참새 자우룩이 날아들고/ 댓잎 하나하나에 깃든 온기가/ 누렇게 뜬 잎 속으로 빨려나간 곳// 그곳 떠난 내 비탈에/ 뿌리내린 몇 그루의 나무들/ 꼿꼿하게 귀 열고 푸를까// 기린산방에는 지금도/ 복숭아 같은 달이 뜨고/ 어미/ 아비/ 붉은 흙집에/ 별들이 내리고 있을까”(조혜전 시 `기린산방`)

포항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진 여류 조혜전(56) 시인이 두 번째 시집 `기린산방(북인 펴냄)`을 펴냈다.

조 시인은 관계의 소중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로 증명하고 있다. 그가 쌓아 올리는 `시의 집`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인연을 생각하는 관계로까지 나아가는 집적체이다.

시의 언어로 “촘촘한 그물을 깁”는 이유는 “인연의 고요”를 세상에 알리고 해체된 관계를 다시 씨줄과 날줄로 엮으려는 시인의 의지와도 상관된다.

시인이 쌓으려는 시의 성채(城砦)는 `실체가 없는 그림자` 신기루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적극적으로 현실과 맞부딪히는 싸움이다.

시인의 시선은 현재적 시간 속에만 멈추어 있지 않다. 고대의 시간 속으로 회귀하기도 한다.

화석은 시간이 남긴 생명의 집적물이다. 공룡 발바닥에도 자연과 맞부딪힌 흔적이 남아 있다.

시인의 상상력은 동화적 심성으로 거듭난다. 백악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집적물은 자연의 일부분에 남겨지고 기록된다.

그렇기에 “바위에/ 내리고/ 쌓이고/ 패이고” 하는 지난한 과정을 수만 년 동안 이어오는 것이다. 오래된 시간의 퇴적층을 상상하고 끌어안는 힘이 바로 생명과 자연을 지켜내는 힘이다.

이번 시집의 제목 `기린산방`은 조 시인의 친정집 당호다. 친정집은 시인에겐 고향의 공간이며 시원(始原)의 공간이다. 그의 시에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그리움의 정서는 자신의 원적지인 `기린산방`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비롯된다.

그가 그리워하는 `기린산방`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해 있다. 세상이 모두 변해가는 현실 속에서 시인이 그리워하는 원초의 공간은 세상과 다른 시간에 있다.

그러한 원초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심원한 의미를 전달해준다. 조혜전이 끊임없이 사유하고, 누려가는 `자연`이라는 대상과의 조우는 이러한 의미를 실현하는 구체적 정황이다. “붉은 흙집에/ 별들이 내리고 있는” 고요한 풍경은 독자들에게 성찰의 시간을 허락하고 있다.

이번 시집 곳곳에는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과 외경, 그리고 생명에 대한 시인의 태도까지 절실하게 묻어난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천착은 관계성의 회복으로부터 이루어지는데, 시인은 이를 잘 간파해 시적 대상물을 선취하고, 이를 드러낸다.

세련된 시적 수사에 대한 골몰을 조금 더 관심있게 탁마한다면 또 다른 새로운 시적 세계를 독자들에게 선보이지 않을까 기대한다. 모든 생명은 늘 절실하며 아름답다.

시인 이태수는 “조혜전은 온갖 `인연의 고요`로 촘촘한 그물을 깁듯 시를 쓰는 걸까. 그의 시편들이 쓸쓸하고 적막하게 젖어 있으면서도 따스하고 투명하게 반짝이는 건 단정한 슬픔 뒤에 더 붉어지는 사과나 향그러운 풀꽃들이 풀어내는 그 순결의 언어들을 지향하는데다 꿈의 저편 `햇살 고운 언덕 위의 흙집` 속에서의 맑고 밝은 사랑을 은밀하게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고 평했다.

전주 출신인 조 시인은 1995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해 행단문학 동인, 자유문학회, 한국문인협회, 경북문인협회, 포항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첫 시집 `빛들이 지어 놓은 집`을 펴낸 바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조혜전 시인 두 번째 시집 `기린산방`

북인 刊, 104페이지, 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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