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시삼백` 출간한 후 넉 달 만에 낸 시집
자신의 사상 풀어낸 짧은 산문 243편 수록

`생명` `살림`의 시학을 문학과 삶을 통해 구현해 온 김지하(69) 시인.

우리나라 저항시인의 대명사인 김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흰그늘의 산알 소식과 산알의 흰그늘 노래`(천년의시작 펴냄)를 펴냈다.

지난 3월 시집 `시삼백`을 출간한 후 넉 달 만에 낸 시집으로, 자신의 사상을 풀어낸 시와 함께 짧은 산문 243편을 수록했다. 동서양의 방대한 학문들의 융합을 통해 `아시안 네오·르네상스`를 요청하며 심원한 우주생명과학을 설파하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는 `산알`에 집중했다.

산알은 1960년대 초 경락의 실체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북한의 의학자 김봉한이 내세운 개념이다. 그는 인체에 혈관이나 림프관과는 다른 가는 관이 있으며 그 관 속 액체 안에 있는 산알이 세포 재생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봉한관 속의 산알이 세포가 되고 세포는 다시 산알이 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생명현상의 근본이 된다는 이론이다.

한국 근현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거니와, 저항시인으로서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은 바 있으며, 2010년 제8회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한 김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그리스도교사상·미륵사상·화엄사상·선불교·기(氣)철학 등의 여러 사상들을 재해석해 자신의 독특한 생명사상을 펼치면서, 우주적 생명의 수행과 그에 따른 사회변혁의 실천적 전망을 제시한다. 또한 우주의 음률인 율려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홍익인간과 화엄세계를 구현하고 그 원형을 단군조선의 `마고성`에서 찾으려는, 이른바 `율려운동`의 주축으로서의 활동도 보여준다.

최근 `살아 있는 생명의 알맹이`로서 `생명령(生命靈)`이나 `영적인 생명치 유력의 실체`를 이르는 말인 `산알`을 예찬했던 김지하 시인은, 이번에는 동서양의 학문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며 근원적인 인식의 변화와 구체적인 실천의 방법론을 제안한다. 시인에게 산알이란 삶의 일부이자 일체이며 정화제이고 수련이며,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흐름이다.

`산알은 도처에 있다`는 시의 제목처럼, 시인은 온갖 것들로부터 산알을 찾아낸다. 현대를 전체적으로 조감하는 동시에 꿰뚫어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산알`과 `흰그늘`의 미학으로써 치유와 소통을 도모하며, `아시아의 마음`에서 새로운 생명과도 같은 희망을 발견한다.

동서양, 인간과 동식물, 생물과 무생물 등의 구분이 없이 우주적인 관점으로 역사·철학·문학·문화 등을 망라한 심원한 지적 탐구를 통해 우주생명과학을 개진한다.

시집 1부 `흰그늘의 산알`에서는 한 테마에 대한 철학적이고 산문적인 단상을 적고, 2부 `산알의 흰그늘 노래`에서는 그 테마를 다시 시로 노래하고 있다. 테마는 제도, 열기, 주체, 공부, 철학, 문화, 소통 등을 비롯해 모두 121종에 달한다.

“나는 시인이고/시인은 누구나 프랑스 시를 사랑한다/그러나/내겐 특별한/사랑이 따로 있다//보들레르, 아니다/랭보, 아니다/말라르메, 아니다/발레리역시 아니다//단 한 구절/발레리의 다음 시 구절 하나다//`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프랑스는/유럽은//이 한구절로 내게 인류 모두 앞에/생생히 살아 있다//아!//그 바람 말이다”(`산알이 도처에 있다`)

“꼭 탈이 난 것이 고쳐져야 산알이 아니라 정신적인 치유도 산알”이라며 발레리의 시가 바로 산알이라고 말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김지하 `흰그늘의 산알 소식과 산알의 흰그늘 노래`

천년의 시작 刊, 4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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