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 서예가·시조시인
삼복 더위가 무색하리만치 젊은 선수들의 열정과 기량을 겨룬 경북도민체육대회가 얼마 전 막을 내렸다. 포항지역에서 열린 이번 대회를 접하면서 `제48회 경북도민체육대회` 타이틀이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서예 여류 유망작가의 필체를 현수막으로, 깃발로 만들어서 거리마다 눈길마다 펄럭이는 모습으로 볼 수 있어서 내심 흡족했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역동적인가! 노란 바탕에 붓의 흔적과 먹의 질감이 어우러져 먹 글씨가 한결 친근하고 생동감이 넘쳐나질 않는가! `빛나라 포항의 꿈, 솟아라 경북의 힘` 슬로건 또한 거리 곳곳에 밝고 힘찬 깃발로 환호하듯 나부껴 선수와 시민들의 가슴을 더욱 벅차게 하질 않았던가! 25일 폐막한 `제5회 전국해양스포츠제전` 타이틀 역시 붓으로 쓰여져 영일만 하늘에 두둥실 떠서 대회 분위기를 한껏 이색적으로 고조시켰다.

필자의 편협한 소견인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러한 타이틀과 슬로건을 컴퓨터 서체나 인쇄 활자체로 구성했었다면 그 느낌과 시사하는 바가 그다지 크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같은 글씨라도 기계적으로 정형화된 활자체에 비해 쓰는 사람의 손끝에서 묻어나는 필체의 느낌은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딱딱하고 정형화된 컴퓨터 서체는 단순히 내용 전달만 할 뿐이지만, 서예작품으로 쓰여지는 서체는 예술성과 상징성, 율동성 등이 가미돼 훨씬 멋있게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번 대회를 열면서 작은 부분까지 다각도로 검토하고 입안한 실무 추진위원들의 넉넉한 안목과 지혜가 돋보인다. 이는 곧 영일만 르네상스 시대를 주창하며 문화예술이 꽃피는 포항을 지향하는 시정(市政)의 작지만 큰 변화의 노둣돌로 여겨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호미곶 한민족 해맞이 축전` 타이틀을 비롯 시내 식당가 간판이나 곳곳에 설치된 현수막 등을 눈 여겨 살펴보면 그러한 서체의 변화를 조금씩 감지할 수 있다. 또한 스틸러스 축구단의 팀 이미지 칼라도 최근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름다운 축구` 명제를 한글 솔뫼민체폰트로 활자화해 팀의 스피드와 역동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했다.

지난 6월의 거리를 축구열기로 뜨겁게 달궜던 남아공월드컵 16강 한국전 응원 시의 `다시 한번 大~한민국` 이나 `KOREA` 이니셜, 2002년 4강 신화 창조 시 2002개의 노루털로 만들어 썼었던 `Be The Reds!`가 티셔츠로 만들어져 온 국민의 가슴을 온통 붉게 수놓지 않았던가.

이는 곧 서예의 율동성, 역동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인간 심장의 박동, 동작 등 일체의 신비로운 율동을 획 속에 표상, 시각적으로 형상화시켜 음악과 함께 유동미, 리듬감을 살려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서예를 고정된 음악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서예는 문자를 매개로 하여 자신의 심성을 표현하는 예술이지만, 독특한 품격과 매력을 갖고 있어서 생활환경을 미화시키고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효용가치가 큰 심신활동이다. 현수막, 간판용 서체는 물론 가훈, 사훈, 책자 제호(題號), 컴퓨터용 폰트, 도시 및 기업 브랜드 이미지, 달력, 연하장, 기념물, 커튼, 다포, 의류, 방석, 조명 스탠드 등 각종 서사작업에서 서예문화상품에 이르기까지 실로 적용범위는 무궁무진한 것이다. 최근에는 음악치료, 미술치료, 웃음치료와 함께 서예치료로 정신과 마음의 안정, 건강을 찾는 신 장르로도 주목받고 있다.

서예를 배움은 단지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매우 유익한 활동으로서 개인의 사상과 인격수양, 예술적 재능과 문화 교양의 개발, 침착성과 인내심 그리고 의지의 단련을 강화시키며, 또한 심신의 건강과 심미안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

기술과 첨단, 컴퓨터 매체의 생활화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 손 글씨마저 쓸 일이 드물어져 문화의 정신적 가치를 필요로 하는 이 시대, 이른바 포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를 영일만 르네상스 시대에 거리의 간판이 서예작품으로 재정비되고 행사 타이틀이나 슬로건, 안내판 등이 독창성을 살려 실용과 예술이 어우러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한켠에 느림과 여유, 끈기의 미학 - 동양 특유의 은은한 멋과 선비정신이 우러나는 서예의 융성과 꾸준한 저변 확대를 자못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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