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중단한 일기장에

오늘 일기를 계속하여 써도 전혀 어색지 않구나

강산도 변하고 만나는 사람도 바뀌어야 옳을 텐데

세월을 뒤집어놓으면 똑 같은 모래시계

아이 둘과 아내를 위해 몇 시간

짬을 낼 수 없는 처지도 같고

친구들과 어울려 시큼한 호프잔만 들이키는 것도 같다

생계는 여전히 발뒤꿈치 물려고 달려오는 도사견

그때도 달렸고 지금도 달리지만

머리카락만 성성해졌고 약간 배가 나와

달리기가 힘들다는 것

하지만 이 긴 경주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일까

시멘트벽에 붙은 입동의 헐벗은 담쟁이덩굴이

내 몸으로 달려올 것 같아

나는 열린 창을 화급히 닫는다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2002)

강형철 시인의 시는 자본주의가 뱉어놓은 부작용, 그 폐악들에 대한 끊임없이 비판하는데 치중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준다. 자본화된 세계의 일상과 질긴 싸움을 계속해가는 그의 시는 야유와 독설 같은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풍자와 해학 등을 통해 신랄하게 그 부정적인 면들을 지적하고 있다. 소시민으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리 달라진 게 없고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의 이 시에도 전체적으로 그런 시적 경향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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