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강남몽` 창비 刊, 380쪽, 1만2천원

소설가 황석영(67)씨가 새 장편소설 `강남몽(창비 펴냄)`을 출간했다.

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에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연재한 소설을 묶은 책이다.

`강남`으로 대표되는 한국 자본주의의 형성 과정과 이에 얽힌 인간의 욕망을 그렸다.

수십년에 걸친 남한 자본주의 근대화의 숨가쁜 여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며 우리 시대 삶의 바탕이 어떻게 이루어져왔는지를 실감나게 제시하고 있다.

소설은 강남의 대형백화점이 무너지는 1995년 6월에서 출발해 3·1 운동 직후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강남 형성사`를 담았다.

5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백화점 회장의 후처가 되면서 `강남 사모님`으로 신분 상승한 화류계 출신의 박선녀, 일본 헌병대 밀정으로 일하다 해방 후 미국 정보국 요원을 거쳐 기업가로 성공한 재벌 회장 김진, 강남 부동산 투기로 큰돈을 번 심남수, 개발독재시대 밤의 암흑가를 주름잡은 조직폭력배 홍양태, 어려운 살림에도 희망을 품고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는 임정아 등이 차례로 등장해 `강남의 꿈`을 재구성한다.

이야기는 1995년 6월, 1천5백여명의 사상자를 낸 강남의 백화점 붕괴사건으로 시작한다.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해온 개발시대의 욕망과 그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그 사건으로부터 `강남몽`은 현재의 우리 삶을 규정하는 역사적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강남의 꿈`을 좇아 달려온 인물 군상의 부침을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강남몽`은 단 한 권의 소설에 남한의 자본주의 형성과정과 오점투성이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커다란 스케일을 자랑한다. 3·1운동 직후부터 한국전쟁 군사정변을 거쳐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설에 녹아 있는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그 이면의 숨겨진 진실과 에피소드들은 황석영만의 선 굵은 서사와 역동적인 묘사의 힘으로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강남몽`이 그리는 다섯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으로 현실적인 실체성을 지니고 다가오면서도 끝내 덧없다. `강남`이라는 남한 자본주의의 한 상징, 또는 황금을 향한 욕망 자체가 너무나 견고하고 뿌리깊은 것인 동시에 1995년의 백화점 붕괴사건이 상징적으로 드러내보였듯 한편으로 너무도 덧없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로써 `강남몽`은 우리가 발딛고 선 지금의 현실을 추동해온 욕망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깨닫게 하며, 동시에 그 꿈과 욕망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단단한 물질성을 지니고 이어져왔는지 또한 절감하게 한다.

그러니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밝힌 의미를 곱씹어본다면 `강남몽(夢)`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무엇보다 문제적이다. 우리가 발딛고 선 현실 자체가 한바탕 꿈인 것은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그 꿈에서 깨어났는가.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꿈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은 아닌가. 또는, 꿈에서 깨어나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강남몽`은 그렇게 우리에게 묻는 것이다.

황씨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차례로 무너진 1990년대 중반 무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며 “지금은 그때보다 질적, 양적으로 큰 성장을 했지만 우리 욕망의 뿌리는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중심이 되는 다섯 인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백화점 붕괴사고를 비롯해 제주 4·3항쟁과 여순사건, 5·16 군사쿠데타 등 현대사의 굵직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방대한 역사와 거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야기는 빠르고 힘 있게 전개된다.

박정희, 김구, 전두환 등의 역사적 인물은 실명으로 그려지지만 기타 주변 인물과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작가가 만든 이름들이다.

그는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의 그늘과 상처를 다룬 작품이면서 현재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라는 취지에서 쓴 소설”이라며 “현재 우리의 욕망과 좌절, 문제점들은 시간의 상처 속에 그 흔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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