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시인
키가 큰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가만히 있어도 보통은 넘는다. `키 큰 사람은 싱겁다`는 정도이다. 그런데 키가 작은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가만히 있어도 평균이하로 취급해 버린다. `쬐끄만게 우습다`라든지 `난쟁이 똥자루`라든지 좀 점수를 줘도 `작은 고추가 맵다`는 정도다. 키가 작은 사람은 울화통이 터지는 대목이지만 어쩔 수 없다. 키 작은 사람이 화를 내는 모습이 더 우습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자 키 180이하는 루저(loser:실패자)라는 막말이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이 세상은 모두 키 큰 남자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영웅들을 살펴보면 키가 큰 사람보다는 키가 작은 사람이 많다. 나폴레옹이 약 160cm, 중국의 지도자 모택동은 약 150cm, 등소평은 158cm, 박정희 전 대통령은 165cm,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가 165cm,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마라도나가 165cm,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152cm, 고려의 장수 강감찬 장군의 키는 157cm, 소련의 우주비행사 가가린의 키가 157cm, 스페인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키는 163cm, 징키스칸은 165cm로 추정한다.

이정도만 살펴보아도 사람들은 키가 큰 것을 좋아하지만 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성경에도 외모가 준수한 사울 왕을 세운 것을 후회하고 외모도 보잘 것 없었으며 키가 작았던 다윗 왕을 세운 것을 오랫동안 기뻐하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외모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란 말씀은 깊이 새겨둘만한 내용이다.

문학 활동을 같이 하게 된 수필가 J씨는 청년이 되기까지도 키가 작아 고민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미국에서 키 크는 기계를 사들였다고 한다. 저녁에 잠자기 전에 전기를 연결하고 스위치를 켜고 누우면 아래쪽에서 기계가 발을 잡아당기고 위쪽에서는 머리를 잡아당겨 인위적으로 키를 늘려주는 장치였다. 밤새 등 쪽에 열선이 있어 뜨뜻하게 덥혀주어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 재어 보면 무려 5cm 정도 키가 커 있다는 것이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 손뼉을 치고 했으나 좋은 것도 잠시 저녁이 되어 키를 재면 키는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너무 오래 사용한 탓인지 마침내 열 감기에 심하게 걸려 오랫동안 사용해 봐도 별 효과 없는 그 기계를 팽개쳐버렸다고 한다. 이후로도 등 푸른 생선이 좋다니 콩나물이 좋다니 해서 쫓아다녀봤지만 모두 다 헛수고였다. 그는 키 크는데 열심을 내다가 드디어 키 큰사람만 보면 괜한 오기가 솟아나서 그들이 미워졌다고 한다. 급기야 짧고 기다란 것이 맞댄 경기나 싸움만 보면 짧은 편을 드는 것은 물론 열성적으로 응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1976년 10월16일 인천에서 WBA세계챔피언 밴텀급 권투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홍수환 선수와 멕시코 선수 알폰소 사모라의 격돌이었는데 당시 권투에 열광하던 시기라 이 경기를 요즘 월드컵 축구 못지않게 국민들이 시청하고 있었다. 부산 사상에 있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사람들이 모여 이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홍수환을 응원하는 사람들 틈에 사모라를 응원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홍수환의 편을 들지 않은 그는 홍수환이 져버린 이 경기 끝에 모든 사람들의 눈총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때 나를 돌아보는 눈빛들이 사나워서 맞아죽을 뻔 했어” 이렇게 말하는 그는 아직도 키가 153cm 정도다.

그래도 그는 당당히 살아왔으며 작은 키가 무색하게 큰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모택동, 나폴레옹도 150정도래. 키가 작은 사람이 오히려 영웅이 많지. 키 큰 것 아무래도 싱거워. 노태우 대통령이나 레이건 대통령을 봐. 물렁하잖아. 역시 작은 고추가 매워”라며 작은 키를 오히려 자랑한다. 그래도 역시 뒤쪽은 씁쓸한 표정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이제 그는 키 큰사람을 만나면 먼저 손을 내민다. “당신은 장(長)이고 나는 단(短)이니 장단이나 맞춰볼까?”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길고 짧음을 맞대어 다투는 것도 삶의 한 풍경이지만 길고 짧음이 어우러져 장단을 맞추는 것은 더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키는 짧은 것 보다 긴 것이 좋다.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