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대생 납치살해사건 당시 범인의 협박 전화가 걸려온 피해자의 집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 간부가 피해자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코까지 골며 잠을 자고, 술까지 마신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1일 오전 납치·살해된 여대생 이모(26)씨의 시신이 유기된 경남 거창군 부근 88고속도로 변에 도착한 이씨의 어머니 김모(50)씨와 아버지 이모(55)씨는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 “사건 발생 당일인 지난달 23일 오전 7시46분께 금품을 요구하는 범인의 첫 협박전화가 걸려온 뒤 집으로 찾아와 대기하고 있던 수성경찰서 최모(48) 경위가 오전 11시께 소파에 앉아 1시간가량 잠을 자며 코까지 곯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최 경위는 이어 오후 4시께 함께 있던 여경에게 5만 원권 1장을 주고 소주 1병과 맥주 1병, 컵라면, 담배 등을 사오게했다”며 “여경은 술을 마시지 않고 최 경위만 술을 마셨으며, 여경이 사온 소주 1병과 집에 있던 소주 1병 등 총 2병을 마셨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5면>

이씨의 아버지는 경찰 수사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아버지 이씨는 “사건 당일 은행현금출금정지도 우리 가족들은 반대했다. 특히 집사람이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는데 경찰은 `괜찮다. 이번에 범인이 은행에 오면 반드시 잡을 수 있다. 범인은 독 안에 든 쥐다`며 식구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다”면서 비난했다.

이씨는 또 “집사람이 `왜 현금출금정지를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드느냐`고 따지자 경찰은 `은행에 돈도 없었지 않느냐`고 말해 정말 어이가 없었다”며 “그런 경찰들을 믿고 딸아이의 목숨을 맡긴 내가 미쳤다”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오후 경찰은 대구 수성경찰서 최 경위의 음주 파문과 관련한 자체 조사를 하고 해명자료를 발표했다.

경찰은 해명자료를 통해 사건 당일인 지난달 23일 오후 7시26분께 범인으로부터 마지막 협박전화를 받고 피해자가 흥분하는 상태에서 1시간여 동안 “다시 연락이 올 것이니 부모님께서 기력을 차리셔야 한다”며 안정을 시키던 중 피해자 어머니가 저녁을 준비하겠다고 해 그냥 먹을 것을 좀 사오겠다고 말하고 김밥 등을 사왔다고 밝혔다.

술에 대해서는 “최 경위가 피해자 아버지에게 `약주는 하시느냐`고 물었으며 `그렇다`고 대답해 술을 사와 3~4잔 정도 나눠마셨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유가족들이 4시께 술을 사러 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아파트 CCTV를 통해 여경이 밤 9시21분께 나가 9시44분께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잠을 잔 것과 관련해서는 “최 경위는 전날 밤샘 당직 근무를 한 뒤 납치신고를 받고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해 총 36시간을 근무, 극도로 피로한 상태에서 밤 11시10분께 소파에 앉아 대기하던 중 깜박 잠이 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유가족에 따르면 범인 김씨는 사건 당일인 23일 오후 7시25분께 마지막 전화를 걸어 그 전과는 다르게 막말과 함께 “경찰에 신고했네. 지금 경찰에게 쫓기고 있거든. 고맙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말했다.

/김낙현기자 kimr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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