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 / 시인
이미 저 세상으로 간 미당 서정주 시인은 “나는 저 뻐꾸기 소리만은 아직 영 10분의 1도 표현하지 못한 것 같다” 라고 한 적이 있다. 어스름이 내려오는 산기슭이나 보리밭 둔덕에서 듣는 뻐꾸기소리는 마음과 생각의 공간을 확장시키는 힘이 있다. 오랫동안 귀 기울여 듣고만 싶은 아득한 고향 같기도 하고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아름다움의 한 자락인 것 같기도 하고 듣고 있으면 내가 녹아서 흘러내리는 계곡의 맑은 물이 될 것 같기도 한 어떤 것이다. 그러니 그토록 원하던 뻐꾸기 소리에 대한 완전한 표현을 못다 한 미당의 무덤가에도 뻐꾸기 울음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미당의 시 속에서 뻐꾸기에 대한 표현들을 얼마간 찾아보면 `뻐꾸기소리도 고추장 다 되어 창자에 베는데`, `뻐꾸기는 강을 만들고 나루터를 만들고`, `뻐꾸기는 섬을 만들고 이쁜 것들은 모두 섬을 만들고`, `뱃속 텅 빈 창자 먼 산 뻐꾸기 소리로만 채워지던 보릿고개`, `머리에도 뼛속에도 가슴속에도 뻐꾸기 울음소리뿐`, `호주머니 감꽃들을 실에 꿰어서 염주를 만들어 목에 걸면 뒷산의 뻐꾹새가 그걸 알고서 제 목에도 걸어달라 울고 있어요`, `뻐꾹새들도 가슴이 아푸다면서 우리들의 산에선 떠나버리고`등이다. 외에도 귀촉도는 낮에 활동하며 우는 새로 두견새와 함께 뻐꾸기과의 새들에 대한 다른 이름으로 미당의 시에 가끔 등장하기도 한다. 참고로 야행성인 소쩍새는 뻐꾸기과가 아니고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이다. 미당은 뻐꾸기 소리의 애절한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 민족의 한과 그 속에 개인들이 감내해야 했던 슬픔, 애환 등을 드러내었다.

뻐꾸기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름새인데 단독으로 생활할 때가 많으며 나무 위나 전선에 잘 앉는다.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뻐꾹~ 뻐꾹 하고 우는데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너무나 듣기 좋아서 정각을 알리는 시계 알림음에도 사용되고 있다. 뻐꾸기는 탁란을 통해 종족번식을 하는데 그것은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옳지 못한 일이어서 매우 나쁘게 여겨지고 있다.

탁란이란 다른 작은 새인 멧새, 때까치, 종달새, 노랑할미새, 알락할미새, 개개비등의 둥지에 알을 맡기고 키우는 것을 말한다. 뻐꾸기는 번식기가 되면 가짜 어미새가 될 작은 새의 지저귐과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다가 암컷은 가짜 어미새의 알 한 개를 부리로 밀어 떨어뜨리고 둥지 가장자리에 자기 알을 낳는다. 암컷은 12~15개의 알을 산란하며 새끼는 알을 품은 지 열흘쯤 만에 부화하고, 부화한 새끼는 하루 이틀 사이에 같은 둥지 속에 있는 가짜 어미새의 알과 새끼를 사정없이 밀어 떨어뜨려 버린다. 가짜 어미새로부터 3,4주 먹이를 받아먹고 둥지를 떠난 후에도 일주일 넘게 가짜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다. 가짜 어미새로부터 자란 뻐꾸기는 커서 알을 낳을 때 자신을 키워준 가짜 어미와 같은 종류의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곳이 새끼가 자라기에 알맞은 곳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소리가 아름다운 새라고 삶이 아름다운 것은 아닌데 여기에도 깊은 뜻은 있다. 미당도 일제에 부역한 친일행위가 문제가 되어서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이 땅에 미당의 시 읽지 않고 시 쓴 사람 나와 보라`고 황동규 시인이 말했을 정도로 그의 시는 한국시의 큰 뿌리이다. 우리나라 대부분 시인들의 시 속에는 모두 미당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가 낳은 뻐꾸기 알들이 탁란으로 자라나서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다. 해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낳고자 할 때, 아프지만 둥지에서 내 것을 밀어내어 과감히 떨어트려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줄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다. 이 새로운 깨달음은 뻐꾸기의 알을 닮았다. 남의 생각이 내 생각 속에 틀을 잡고 깊이 천착된 이후에야 큰 생각, 큰 작품, 큰 사상이 나오는 기틀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토록 아끼고 먹이를 먹여 주었으나 내 새끼가 되지 못하면 큰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런들 어떡하랴 새로운 것은 없고 모두가 다 남의 것으로 탁란 된 생각들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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